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 회의에서 재판중지법 추진 번복 사태를 두고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 지도부가 대통령실과의 교감 없이 섣불리 입법을 추진하다 야당 반발만 불러일으키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가렸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간 누적된 원내 지도부와 당 지도부 사이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4일 오전 비공개로 진행된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원내 지도부 인사가 “재판중지법 추진은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비판했고, 참석자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성과를 홍보해야 하는 시기에 원내 지도부와 조율도 없이 (지도부가) 재판중지법 얘기를 한 건 부적절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도 이날 라디오에서 “이 문제는 지도부 차원에서 논의됐던 문제가 아니다”며 “이번 주는 사실 APEC 정상회의 성과를 홍보하는 게 당의 기조였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지난달 26일 열린 민주당 비공개 의총에서 재판중지법 처리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정상외교 슈퍼위크를 끝낸 직후인 지난 2일에는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11월 내 처리’ 가능성을 말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 대통령은 전날 여당에 입법을 추진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를 설명하며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아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했는데, 당 내부에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지도부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원내 지도부에선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간 소통 채널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원내 관계자는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불통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보다 긴밀히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가 당 지도부와의 묵은 갈등 표출이라는 시선도 있다. 정청래 대표는 취임 이후 김병기 원내대표가 합의했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구성, 특검법 개정안에 대해 직접 재검토를 지시해 김 원내대표가 반발한 바 있다.
당내 강경파 사이에선 재판중지법 필요성이 또 언급됐다. 법사위 소속 박균택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국민의힘이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저는 재판중지법을 통과시키자고 또 주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