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뤼순감옥 박물관을 최근 방문했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수감됐던 방에는 ‘조선 애국지사 안중근 감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중국어, 영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훼손 방지를 위해 내부 출입은 통제됐다. 창밖에서 들여다본 감방 안에는 낡은 침상과 책상, 의자 등이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순국하거나 수감됐던 외국인 항일운동가들을 소개하는 별도 기념관은 안 의사와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한인애국단의 유상근·최흥식, 황덕환, 박민항 등 한국 독립운동가에게 대부분 공간을 할애했다. 특히 안중근·신채호·이회영 선생에 대해선 작은 교실만 한 공간을 배정해 생애와 공적, 사상 등을 상세히 전했다. 한쪽 벽에는 중국의 초대 총리인 저우언라이가 1963년 한·중 역사관계에 대한 담화를 발표하며 “청일전쟁 후 중·한 양국 국민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은 20세기 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언급한 내용이 붙어 있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중국 항일운동에도 불을 붙였다고 평가한 것이다.
안 의사가 순국한 장소도 원형대로 복원돼 있었다. 나무로 만든 처형대와 밧줄, 안 의사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영정처럼 발판 위에 올려진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비장했다. 바로 옆방에는 안 의사의 흉상과 함께 그가 남긴 유묵 20여점이 중국어 간체자와 한국어로 된 설명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었다.
뤼순감옥은 일제에 맞선 중국인들도 많이 순국한 곳이지만,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주연처럼 비중 있게 소개했고 공적을 평가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이곳을 찾는 한국인에겐 중국에 우호적인 감정이 생길 듯싶다.
중국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주무대였다. 관련 사적도 많다. 뤼순감옥 근처에는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일제 관동법원 옛 건물이 보전돼 있고, 하얼빈에도 안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장소들이 있다. 상하이, 항저우, 충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돼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겐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아쉬운 곳은 수도 베이징이다. 신채호, 이회영, 김창숙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베이징은 상하이 다음으로 독립운동 사적이 많은 곳이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베이징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주거지와 주요 단체의 창립지 등 26곳의 사적이 있다. 하지만 표지판 하나 제대로 설치된 곳이 없고 상당수가 재개발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베이징의 사적을 어렵게 찾아온 한국인 관광객들은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더 늦기 전에 베이징의 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서둘러야 한다. 고증이 끝난 곳에는 명판을 설치하고 추가 훼손 방지와 복원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수도로서 상징성을 고려해 특정 사건이나 단체, 인물을 기리는 공간을 넘어 중국을 무대로 전개한 독립운동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재중국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여건은 좋다. 올해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자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다. 시진핑 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해 한·중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선 양국의 인문교류 활성화와 우호정서 함양에 공감을 이뤘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9월 “항일 전장에서 한·중은 함께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고 동아시아의 민족적 존엄과 자유를 지켰다”며 “이는 양국 국민의 혈맥 깊은 곳에 새겨진 공동의 기억이다. 한·중은 항일운동 역사의 공동 연구, 유적 보호, 공동 기념 등을 통해 젊은이들이 과거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번 공감한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