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을 찾는 발길이 국경을 넘었다. 정부가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신종 비만치료제 오남용 단속에 나섰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규제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약을 처방받는 우회로를 찾았다. 국내 약값도 가격 경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간편하고 저렴하게 약을 구할 수 있는 일본으로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4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일본 후쿠오카·도쿄 등 일부 클리닉에서 체질량지수(BMI)와 상관없이 설문지만 작성하면 위고비·마운자로를 처방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후기와 추천도 잇따른다. “설문지만 쓰고 바로 처방받았다” “3개월분을 한 번에 받으면 항공권을 포함해도 한국보다 싸서 일본 당일치기가 낫다” 등의 경험담이 공유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마운자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규제망을 피한 ‘비만약 원정 쇼핑’은 오히려 더 확산되는 분위기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마운자로 일본’을 검색하면 도쿄 신주쿠, 후쿠오카, 요나고 등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병원을 소개한 게시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뷰티나우’를 통해 출국 전 한국에서 상담을 받고, 일본 일정에 맞춰 호텔로 약을 배송받는 방법도 공유된다.
원정 열풍의 핵심 이유는 가격 차이다. 처방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국내 마운자로 출고가는 2.5mg 28만원, 5mg 37만원, 고용량(10mg) 52만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반면 일본의 일부 ‘성지 병원’에서는 2.5mg에 12만~15만원 가량으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위고비·삭센다 등 일부 비만치료제가 일본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서 이에 따라 비급여 의약품인 마운자로 역시 낮은 가격에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법의 허점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행법상 여행자는 ‘자가사용 목적’으로 3개월분 의약품을 처방전 없이도 ‘핸드캐리’로 반입할 수 있다. 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세관의 전수조사가 필요한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미용 목적의 과다 복용, 대리 반입 등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췌장염, 장폐색 등 부작용 위험이 큰 전문의약품 역시 전문가의 관리 없이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는 상황이다.
비만치료제의 글로벌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위고비 처방 건수는 지난해 10~12월 4만9815건에서 올해 상반기 34만5569건으로 7배 증가했다. 마운자로는 지난 8월 첫 집계에서 1만8579건이었으나 한 달 만에 7만383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비만치료제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올해 3분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이었다. 3년간 1위를 지켜온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쳤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