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입력 2025-11-05 03:09

오늘은 필자의 솔직한 심정을 언어의 거름장치를 가능하면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다. 그만큼 필자가 속도 상하고 골이 좀 났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필자는 요즘 TV 뉴스채널을 틀면 짜증이 난다. 여야가 한 이슈를 놓고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넌덜머리가 나기 때문이다. 양쪽 어디에서도 창의적이고 진솔하며 국가공동체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유익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자기 진영, 자기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 상대편이 한 것은 무조건 잘못됐다는 식이다. 이렇게 여야가 서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철길같이 평행선을 긋는 싸움박질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하는 것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뉴스채널을 편성해 놓은 방송국들의 상상력 부족한 연출 능력에도 염증을 느낀다. 이런 것을 놓고 영어로는 “I am sick and tired”라고 한다.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난다”란 뜻이다.

필자에게는 이런 식으로 그날의 화제가 되는 뉴스거리 하나를 꺼내놓고, 한 사회의 대표 격이라도 되는 듯 양당파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내어 이들의 의견을 듣는 보도 편성이 매우 낯익다. 필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또 목회하면서 10년을 사는 동안, 미국 CNN NBC를 비롯한 많은 뉴스채널을 통해 이런 식의 보도를 수도 없이 봐왔다. 그때는 생각했다. “저렇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입장을 다 듣게 한 후, 시청자가 최종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이구나.” 그렇게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 지나보니 어느새 한국 뉴스채널도 이런 미국식 뉴스채널 편성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미국 양당파의 입장을 가진 각 사람이 나와 치고받고 싸운 결과가 과연 어떤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의식 있는 지성인들은 국가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할 정도라고 말한다.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내전 직전이라 할 정도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쟁을 일삼고 있다. 이 분열을 따라 미국 국민 전체가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안으로는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외교와 국방 등 국익과 직결된 것에는 언제 그랬냐 싶게 화합하고 단결하던 미국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뉴스채널의 다양성을 가장한 무책임하고 양분된 보도편성이 낳은 실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같은 오류가 한국의 뉴스채널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토론을 들어보면 양쪽 다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일까. 적어도 필자가 볼 때는 이 양쪽의 입장이 절대로 한국 국민 다수의 생각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뿐인가. 이들은 사실 한국사회의 진보를 대변하지도 못하고, 정통 보수를 대변하지도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사회에서 이 양쪽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중도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3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30~40%는 자발적 중도요 자발적 선택에 따라 때로는 진보의 편을 때로는 보수의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왜 이들 중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진절머리 나고 신물 나는 내 편 들기식 입장의 대변자들만이 뉴스를 점령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우리는 늘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어야 하는가. 왜 ‘이것 그리고 저것(both/and)’일 수는 없는가. 그리고 이렇게 하려는 사람들을 통합이 아니라 회색이라고 정죄하는가. 이제는 정말 “지치고 지긋지긋(I am sick and tired)”하다. 중도에 서서 양쪽 다 틀렸다고 말하기도 하고, 양쪽 다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제3의 목소리가 그립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기독교의 가치는 정직 성실 검소라는 보수의 가치와 평등과 약자의 보호라는 진보의 가치를 때로는 포괄하고 때로는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제3의 길이다. 이 제3의 목소리가 사실 갈라진 우리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바로 그 목소리’가 아닐까.

(새문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