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믿음의 시절

입력 2025-11-05 00:33

믿음이 믿음으로 응답받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떠올린 ‘믿음의 시절’은 실재였을까. 아니면 소원하는 세계를 허구로 재구성한 걸까. 인지의 오류이거나 세월의 각색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계기 없이 떠오른 한 문장은 그땐 그랬지 식의 짤막한 회상에 그치지 않고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나는 단순한 믿음 속에서 살았다. 하굣길에 친구가 놀자고 하면 놀이터에서 그가 오길 무작정 기다렸고, 어른의 약속은 내일의 현실이 될 것이라 믿었다. 길에서 말을 거는 낯선 사람도, 활짝 열린 이웃집 대문도,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도 일말의 의심 없이 일상 속에 자리했다. 나의 믿음에는 꼬리표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과 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정말일까?’라는 의심과 경계심이 그 틈에 싹을 틔웠다. 믿음은 점차 확인과 증거를 요구하는 감정이 되어 갔다. 그에 상응하는 결과와 보상이 반드시 주어져야 하는 거래의 영역으로.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에 몇 번씩 망설이는 손짓이나 거짓 정보와 스팸 문자에 속아 당황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믿음이 믿음으로 되돌아오던 시절이 그저 허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어딘지 위태로워 보이는 세상과 그를 닮아가는 내 모습에 안타까움과 공허함이 조금씩 쌓여 갔다.

길가에 핀 들꽃처럼 흔하게, 오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나무뿌리처럼 단단하게 삶 속에 스며 있던 믿음. 세상에 기대고 더불어 사는 힘이었던, 서로의 존재를 열어젖히고 관계 맺는 투명한 방식이었던 믿음을 나는 은연중에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낙담하지 않는 건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낯선 이가 베푼 작은 호의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여전히 있고, 누군가의 정직함이 감동을 불러오는 장면을 여전히 목격한다. 믿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숨죽인 채 이 세상을 지키고 있다. 의심과 불신 이전의 세계를 향한 향수에 응답하듯이.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