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판을 뒤집었다

입력 2025-11-05 00:08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아트선재센터에서 각각 국내외 작가에 의해 미술 제도를 뒤집는 전시가 시도됐다. 아트선재센터에서 하는 아르헨티나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개인전 '적군의 언어' 전시 전경으로 소나무를 뿌리째 천장에 매달았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뒷문으로 들어가는 전시 vs 깜깜함을 경험하는 전시.

21세기 미술은 20세기 미술이 이룬 자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하지만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 소변용 세라믹 변기를 뒤집은 뒤 ‘샘’이라고 이름 붙여 미술 작품이라고 내놓은 그 혁명적 발상에서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최근 미술의 전통과 제도의 판을 뒤집고자 하는 야심 찬 전시가 이어져 눈길을 끈다.


먼저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가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아르헨티나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45)의 한국 첫 개인전 ‘적군의 언어’. 로하스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 하는 악동처럼 모든 걸 뒤집고자 했다. 시작은 1층 출입구 봉쇄부터. 관람객은 건물 오른쪽에 난 작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들어가야 1층 로비 전시장으로 갈 수 있다. 그곳에는 흙더미가 언덕을 이루듯 쌓여있다. 1t 트럭 50대가 동원됐다. 이곳에선 식물이 자라기도 하지만 수박, 호박 등이 버려진 채 뒹군다. 먼 미래 유적지 같은 낯선 땅에는 ‘기계 인간’이 산다. ‘무릎 꿇은 로봇’(엘 핀 데 라 이마히나시온 Ⅲ)은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탐사용 로봇을 참조했다. 버려진 드럼세탁기로 만든 로봇이 머리를 거꾸로 박고 있기도 하다. 미술관 건물을 하나의 조각적 생태계로 만든 이 설치 작업은 작가가 2022년부터 해온 ‘상상의 종말’ 연작이다.

로하스 개인전에 나온 ‘엘 핀 데 라 이마히나시온 Ⅲ’.

2층도 입이 벌어진다. 뿌리를 흙채 감싼 소나무들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전시장에는 소나무 특유의 향기가 난다. 나무에 매달린 기괴한 형체는 새집인데, 전쟁과 기후위기 등을 겪은 뒤 새집이 어떻게 변할지 시뮬레이션해 만든 조형물이다. 마지막 3층에는 그야말로 미술관의 금기인 불이 타오르고 있다. 관객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서 불을 볼 수 있다. 조희현 전시팀장은 “작가가 기존 미술 제도를 해체하고 싶다며 인류 최초의 언어인 불 피우기도 제안했다”면서 “내부는 에어컨을 가동하고 유해 가스 흡수 장치를 달아 소방 안전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말했다. 내년 2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원예술 프로젝트 '숲'의 일환으로 홍이현숙 작가가 선보인 퍼포먼스 '오소리 A씨의 초대' 참여자가 암흑 속에서 동굴을 통과하는 장면을 나이트샷 기법으로 촬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판을 엎는 두 번째 전시는 인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최근 종료한 한국의 중견 여성 작가 홍이현숙(67)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오소리 A씨의 초대’다. 인류세 시대 미술관의 역할을 묻고자 ‘숲’을 주제로 작가 8명(팀)을 초청한 2025 다원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홍 작가는 지난달 11∼26일 하루 3∼4회 매 70분간 진행한 퍼포먼스를 통해 도시의 불빛 때문에 깜깜함이 뭔지 모르는 시대에 암흑을 전시하고 경험하고 나누게 했다. 기자는 다른 참가자와 함께 지난달 16일 참여했다. 헬멧과 무릎 보호대까지 하고 들어간 전시장은 암흑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오소리 굴속으로 기어서 갔고, 평지가 나오면 두려움 속에서 손을 휘적거리며 온 신경을 집중해서 걸었다. 출렁다리 같기도 하고 오소리 몸속 같기도 한 공간을 양쪽 줄을 잡고 걷기도 했다. 벽면을 짚고 있으면 깜깜한 가운데 폭포수 소리를 귀는 물론 손바닥으로 듣는 경험도 했다.

홍이현숙 퍼포먼스 참여자들을 열감지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그 어둠 속에서 인간의 언어는 없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소리를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했다. ‘왈∼왈∼’ ‘끼룩끼룩’ ‘아우∼아우’. 어느 지점에서는 가이드 지시대로 바닥에 누운 채 누군가와 머리를 맞대고 샴쌍둥이처럼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보낸 70분에 대해 김광숙(65)씨는 “상상도 못 한 세계를 경험했다. 마지막에 폭포 소리를 들었을 때는 협곡에서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이 순간 연상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양화종(75)씨는 “지진 등 재해가 나 갇힌 기분이었다. 어떻게 헤쳐 갈까 막막했는데, 옆에 사람이 있으니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누가 더 판을 깼을까. 이미 1920년 독일 쾰른에서는 막스 에른스트(1891∼1976)를 중심으로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그룹들이 맥주홀에서 전시를 열면서 관객들이 ‘신사용 화장실’이라고 적힌 문을 통해 전시장으로 들어가게 했다. 관객들이 도구를 가지고 전시품을 부수는 이 전시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단 한 번의 전시로 역사가 됐다. 그러니 로하스의 전시는 뒷문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화장실로 들어간 100여 년 전의 전시에 비해 뒤엎는 강도가 오히려 약하다.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주제 역시 “이미 뒤샹이 변기를 전시로 내놓았을 때 그 변기가 공장 기계의 생산품이라는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 정신을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면, 어둠이, 그것도 완전한 어둠의 경험이 전시 주제로 나온 적이 있을까. 작가는 현대미술이 갖는 시각 중심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관객을 완전히 어둠 속에 몸을 던지도록 했다. 심지어 가이드조차 야간투시경도 없이 훈련을 통해 공간을 지각하고, 자신도 보지 못하는 가운데,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안내했다. 암흑 속에서야 비로소 살아난 촉각과 청각에 의지해 타인의 존재를 통해 온기와 연대를 느끼게 했다. 그걸 오소리의 초대라고 이름 지었다. 두 전시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더 판을 뒤집었을까.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