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신모(56)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을 군인이라고 밝힌 김모 대위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진지구축 훈련에 사용할 곡괭이 수백 자루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김 대위는 거래가 성사될 무렵 “행정보급관이 도시락 구입을 빠뜨려 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투식량값을 대신 내주면 곡괭이 대금을 결제할 때 한꺼번에 정산하겠다”고 제안했다.
부대 물품 공급 결제 확약서, 국방부 지출결의서를 전달받아 김 대위를 믿게 된 신씨는 그가 알려준 전투식량 업체에 전화를 걸어 1440만원을 송금했다. 이후 신씨는 김 대위, 전투식량 업체와 연락이 끊겼다.
군부대, 정당, 대통령 경호처 등으로 속여 노쇼 또는 대리 구매 사기를 벌인 일당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거점은 최근 로맨스스캠, 리딩방 사기, 보이스피싱 등으로 물의를 빚은 캄보디아였다. 강원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범죄단체 가입과 활동 등의 혐의로 국내외 조직원 114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18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강원청은 전국에서 노쇼, 대리구매 사기 피해가 급증하자 경찰청으로부터 ‘노쇼’ 집중수사관서로 지정받았다. 전국에서 넘겨받은 사건은 560건, 피해액은 69억원에 달한다.
군 간부 사칭이 402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당과 대통령 경호처 사칭이 158건으로 뒤를 이었다. 피해액은 군 사칭 63억9400만원, 정당과 경호처 사칭 5억60만원 등이다.
노쇼 사기는 피싱 조직원이 정당, 군부대 관계자로 속여 단체 회식, 도시락, 숙박업체 등을 예약한 뒤 특정 업체의 물품을 대리구매해 달라고 요청한다. 여기에 속은 피해자가 업체에 돈을 보내면 조직원, 업체가 잠적하는 방식으로 범행이 이뤄졌다.
경찰은 범죄단체의 거점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내 범죄단지로 파악하고 경찰청,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국가정보원 등과 협력해 현지 콜센터를 급습,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경찰은 자금세탁책부터 관리책, 관리총책, 중계기 관리책, 콜센터 조직원, 국내 총책 등 총 114명을 붙잡았다. 이 중 국내 총책 3명, 콜센터 1명, 관리총책 1명, 관리책 4명, 자금세탁책 9명 등 18명이 구속됐다. 현재 검거하지 못한 조직총책 등 17명을 추적 중이다.
이들은 군 간부, 정당을 사칭해 노쇼 사기를 벌이는 콜센터, 가상의 대리구매 물품 판매점 콜센터 등을 운영했다. 조직원은 텔레그램을 통해 모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으로부터 납치, 감금을 당한 피의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범죄 수익금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로 송금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최현석 강원경찰청장은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 콜센터는 물론 이와 연결된 국내 조직까지 척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춘천=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