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으로 논란이 된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윤석열정부가 승인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사업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양국 간 체결된 차관공여계약에 따라 추진되고 있어 중단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사업이 현지 사이버범죄 기반시설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일보가 3일 국회를 통해 입수한 한국수출입은행 자료 등에 따르면 정부가 EDCF를 통해 7000만 달러(약 1001억원)를 지원하는 ‘시아누크빌 전력망 강화사업’은 현재 예산 집행 단계다. 시아누크빌 지역 내 송전선로를 새로 깔고 변전소를 확충하는 유상원조 사업으로, 2022년 6월 윤석열정부가 승인했다.
이 사업은 2022년 11월 한국과 캄보디아 정부 간 차관공여계약 체결 후 지난 1월 캄보디아 전력공사(EDC)가 국내 컨설팅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으며 상세설계에 착수했다. 지난 4월에는 설계비 12억2800만원이 집행됐고 현재 세부설계가 진행 중이다.
시아누크빌은 최근 국제사회가 ‘동남아 사이버범죄 허브’로 지목한 곳이다.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리딩방 사기 등 온라인 기반 범죄조직이 대규모로 활동 중이며, 수천명이 불법 콜센터와 서버 관리 인력으로 감금·착취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지역 일대 대형 호텔과 빌딩이 범죄조직의 전산시설로 악용되는 만큼 급증한 전력 수요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망 확충이 관련 범죄 기반시설을 강화할 수 있어 정책 타당성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정부는 최근 시아누크빌 일대에서 급증한 한국인 대상 납치·감금 사건에 대응해 현지에 합동대응팀을 파견하고 여행경보를 상향했다. 해당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지정한 시점에도 재정 당국은 시아누크빌 전력망 강화사업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후 EDCF를 비롯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내년 관련 예산이 1조2000억원 감액됐지만 이 사업은 감축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유병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지난 8월 예산안 발표 당시 “기존에 편성된 ODA 사업을 전수조사해 집행이 부진하거나 준비가 미흡한 항목을 중심으로 감액했다”고 설명했다. 즉 시아누크빌 전력망 강화사업은 사업 필요성과 예산 집행 가능성 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뜻이다.
시아누크빌 전력망 강화사업 추진은 외교부 산하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캄보디아 현지 치안 문제가 불거진 이후 ODA 사업을 잇따라 재공고한 것과도 상반된다. KOICA는 최근 ‘라타나키리주 공공보건의료체계 강화사업’(약 47억원)과 ‘국립민간항공교육원 교육시스템 강화사업’(약 65억원)을 연달아 재공고했다. 단독 입찰에 따른 절차상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수의계약 특례상 단독 입찰자의 수행능력만 검증해도 계약이 가능해 사실상 치안 리스크를 감안한 속도 조절이란 해석이 나온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사업 범위에 개별 가구·건물에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선로는 포함되지 않고, 다른 해외 원조기관도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양국 간 체결된 차관공여계약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중단 여부는)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 사업의 재검토 여부는 법적·외교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