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된 아파트 상가

입력 2025-11-05 00:41

상업 시설이 부동산시장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정비업계에선 상가 공실 리스크를 우려해 기존 상가를 없애거나 면적을 축소해 재건축을 진행하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상가·오피스·지식산업센터 등 비어있는 상업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도심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꾀한다. 하지만 주거용 전환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 실제 전환율이 높을지는 미지수다.

4일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전국 상가통합(중대형·소규모·집합상가)의 전국 임대가격지수는 99.3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62%, 전분기 대비 0.13% 내렸다. 소규모 상가(-0.96%)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고물가에 따른 민간 소비 위축으로 상가 시장도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상가 임대시장은 경기 부양책의 영향으로 민간 소비가 개선되며 상권 매출은 증가했다”면서도 “일시적 개선으로 임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고, 온라인 쇼핑 강세에 따른 오프라인 상권 침체가 지속하며 임대가격지수는 내림세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전국 집합상가(아파트·오피스텔 상가) 공실률은 10.5%로 전년 동기(10.1%) 대비 0.4% 포인트 상승했다. 서울과 경기의 공실률은 각각 9.3%, 5.5%다. 지방은 더 극심하다. 울산은 집합상가 공실률이 20.5%였고, 경북(27.3%), 전남(23.2%) 전북(17.6%) 강원·제주(17.5%) 등도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상가 침체는 재건축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상가 필요성이 줄어들고, 공실 리스크가 커지면서 상가 소유주들과 협의해 ‘상가 없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상가 조합원은 재건축 후에도 상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보유한 상가 권리가액이 새 아파트 최소 분양 가격보다 높은 경우 혹은 상가를 아예 짓지 않는 경우 상가 조합원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 대치우성1차와 대치쌍용2차 아파트 조합은 상가 소유주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기로 하고 상가 없는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우성4차 조합도 상가 소유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신규 상가를 짓지 않고 아파트만 건립하는 방향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동작구 노량진역 일대 재정비촉진사업 구역 중 1·3구역도 상가 면적을 축소하고 주택 분양 면적을 늘리는 사업계획변경안을 지난달 말 열린 총회에서 가결했다.

상가 없는 재건축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높은 수익률이 보장돼 안정적인 노후 투자 자산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 인해 쇼핑 패턴이 달라지면서 상가를 만들어도 공실로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내 상가 공실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지난 1월 준주거지역의 상가 확보 의무 비율을 없애고(기존 10%), 지난 6월 상업지역 비주거 의무 확보비율은 10%(기존 20%)로 줄인 것도 같은 배경이다.

비어 있는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도 9·7 대책에 공실 상가와 업무시설 등을 활용해 오피스텔과 같은 비(非)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은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동향과 추진 여건’ 보고서에서 도심 오피스·상가의 공실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면 향후 5년간 전국 1만 가구, 서울 4600가구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상업시설 공실을 주거용으로 바꾸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욕실, 주방, 난방시설과 단열·방음 등 주거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리모델링 비용이 많이 든다. 또 화재감지기·비상등·피난구 설치 등 소방설비와 피난·방화 구조, 주차장 기준, 정화조 용량 산정 등도 필요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거용 전환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며 “문재인정부에서도 비주거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공급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던 이유”라고 말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비주택 리모델링은 도시공간의 효율적 활용, 주택공급 증대 등 장점에도 사업 추진에 다수 제약이 있다”며 “용도 전환에 따른 추가 공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전’ 관련 요소 외에는 현행 기준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