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중지법 논란 자초한 여당… 당내서도 “과유불급”

입력 2025-11-04 02:02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 대표는 법원행정처 폐지를 비롯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병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현직 대통령의 형사 재판 절차를 중지시키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 방침을 하루 만에 철회한 배경에는 대통령실의 강한 제동이 있었다.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는 차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잊혔던 이재명 대통령 재판 논란에 여당이 다시 불을 붙인 꼴이 됐다. 당내에서도 ‘오판’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3일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재판중지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세 협상 합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 등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재판중지법의 이달 처리 가능성을 언급한 자신의 전날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중지된 재판 재개 주장을 계속하고 있기에 (재판중지법 추진의) 원인 제공이 국민의힘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을 뿐 법안 추진을 강하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당 지도부에 법안 처리가 불필요하다는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직접 의사를 물은 뒤 우상호 정무수석에게 전달했고, 김병욱 정무비서관이 당을 찾아 최종 입장을 통보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지난 6월에도 당시 ‘박찬대 지도부’에 똑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재판중지법 관련 논란을 당이 불필요하게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이미 재판이 중지돼 있는데 왜 입법을 추진해 괜한 분란을 만든지 모르겠다”며 “별 이슈가 아니었는데 당이 이슈를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강경 일변도의 당 분위기가 오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두세 명 의원이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좀 이상하더라도 반대 의견을 굳이 말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재판중지법도 비슷했다”고 토로했다. 박홍근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민에겐 타이밍도 아닐뿐더러 과유불급으로 느껴질 일이었다”며 “다소 성급하고 오락가락한 대응 과정 또한 세련되지 않았다. 집권당이므로 대통령실과의 불통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대웅 서울고법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재판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민주당이 갑자기 긴장한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게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을 맡은 판사 각각의 실명을 거론하며 재판 재개를 촉구했다. 이병주 기자

야당은 이 대통령 재판 재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 재판 담당 판사 12명의 실명을 차례로 호명한 뒤 “그대들을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재판 재개를 촉구했다. 민주당의 재판중지법 추진 철회에 대해선 “아침에 합의해도 점심 지나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는 민주당이다. 발표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조소했다.

민주당은 다만 법원행정처 폐지 등 사법개혁안에 대해서는 공세적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청래 대표는 ‘사법 불신 극복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 출범식에서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심도 있게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이다. TF 단장을 맡은 전현희 최고위원은 “연내 통과를 목표로 가칭 ‘사법행정 정상화법’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김판 성윤수 최승욱 정우진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