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사우디아라비아의 ‘e스포츠 올림픽’ 구상이 전면 중단됐다. 지난달 30일 IOC와 사우디가 12년간 약속했던 e스포츠 파트너십 계약을 조기 종료하면서다. e스포츠와 전통 스포츠 조직 간 협업의 복잡성이 다시금 드러났다는 평가다.
‘e스포츠 올림픽 게임즈(OEG)’라는 명칭의 이 계획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 기간 중 발표됐다. IOC와 사우디아라비아가 협력해 OEG를 12년 동안 공동 개최하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양측의 동행은 14개월여 만에 계약 종료로 마무리됐다. 그간 업계에서 무성히 제기돼 온 양측의 ‘불편한 기류’가 실재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IOC는 전통 스포츠 중심의 조직으로서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수년간 e스포츠 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게임으로 대회를 치르는 e스포츠의 구조적 특성상 게임사, 주최사, 방송사, 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 IOC는 사우디와의 협의 과정에서 개최 시기, 역할 분담, 이해관계, 인선 등 세부 영역에서 상당한 의견 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의 여성이자 아프리카 출신 IOC 위원장인 커스티 리 코번트리가 지난 6월 취임하면서 사업 연속성에도 차질이 생겼다. IOC는 성명에서 “향후 자체적인 올림픽 e스포츠 모델과 전략을 개발하겠다”며 새로운 파트너십 구조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e스포츠와 올림픽의 조화라는) 근본적인 방향성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게 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가 지난 8월 국가대항전인 e스포츠 네이션스 컵(ENC)을 발표하면서 양측의 결별은 이미 기정사실로 여겨졌다”며 “사우디 e스포츠 집행부가 굳이 IOC의 불필요한 요구를 수용하며 함께 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선 듯하다”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는 상황에서 급한 쪽은 IOC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는 수년 전부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오며 글로벌 콘텐츠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2년 전 출범한 e스포츠 월드컵(EWC)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클럽 이벤트로 자리 잡았고 최근 ENC 개최를 공식화하며 독자 노선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