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춤추는 부동산
냉탕과 온탕 오간 대책들
5년 짜리 정책, 신뢰는 없었다
참회록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
중요한 건 예측 가능한 지속성
단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무보다 전체 숲을 봐야
냉탕과 온탕 오간 대책들
5년 짜리 정책, 신뢰는 없었다
참회록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
중요한 건 예측 가능한 지속성
단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무보다 전체 숲을 봐야
“과거 냉온탕식 정책에 의해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으므로 정책의 근간을 유지하고 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노무현정부의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실이 2006년 작성한 ‘일본 부동산 버블 경험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권(2003~2008)에서 부동산 시장은 급격한 우상향을 보였다. 부동산 대책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57%나 폭등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신년 연설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죄송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또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을 정도다. 그는 정권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에 대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정부가 만든 보고서는 그 어떤 것보다 눈길을 끈다. 정책의 일관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정부에서도 되새겨볼 참회록이다.
과거 정부를 찬찬히 되돌아보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역대 정부 중 가장 이상적인 정책을 편 시기는 노태우정부(1988~1993)다. 1기 신도시로 집값을 잡는 등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인 부동산 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꾸준히 상승했던 부동산 가격이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폭등 양상을 보이자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 토지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한편 주택 200만 가구 공급 대책도 발표했다. 수도권의 1기 신도시(평촌 산본 일산 분당)가 이 시기에 만들어지는 등 공급한 주택만도 총 214만 가구에 달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부합하며 일관적인 정책으로 집값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하지만 다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오락가락의 연속이었다.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관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다 보니 근시안적인 대책이 넘쳐났다. 그러다 보니 정권 때마다 ‘완화(박정희, 전두환)→규제(노태우)→완화(김영삼, 김대중)→규제(노무현)→완화(이명박, 박근혜)→규제(문재인)→완화(윤석열)’ 등을 반복했다. 특히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는 수십차례의 정책을 남발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그 결과 정권도 내주고 말았다. 쏟아낸 정책만 각각 30여 차례와 20여 차례에 달했을 정도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문 정권은 종부세율 인상·공시가격 현실화·다주택자 중과 등 역대급 보유세 강화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전세가격 급등이 맞물리며 보유세 강화는 투기 억제보다 ‘똘똘한 한 채’ 집중 현상을 키웠다. 그 결과 강남·용산 등 핵심 입지 아파트는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새 전국 집값은 43%, 서울은 34% 상승했으며 2021년 주택 증여는 17만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재명정부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집값 과열은 심리적이고 펀더멘털 측면이 더 강하다. 경제성장으로 돈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식들을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시켜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고, 바둑판처럼 교통이 뚫려 있어 생활하기 편한 곳, 백화점과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에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도 자연스레 넘쳐난다. 서울에 수요가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위직의 ‘부동산 내로남불’도 다 여기서 기인한다.
부동산 폭등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가뜩이나 일자리에 좌절하는 청년들에게는 미래 희망의 싹까지 자르는 사회악이다. 정부 예측과 시장 반응이 엇박자가 자꾸 난다면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해 봐야 한다. 좀 더 세련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부동산 대책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대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누적된 규제들을 감안해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긴 호흡으로 시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5년 정권 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아집과 독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부동산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정책이 많아질수록 신뢰는 잃어간다.” 정책 피로감은 시장의 왜곡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남발보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답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