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악몽’은 잊어라… 불장에 ELS도 ‘후끈’

입력 2025-11-04 00:02 수정 2025-11-04 00:02

지난해 발생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 한동안 침체를 면치 못했던 ELS 시장이 최근 빠르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코스피·나스닥 등 주요 증시가 전방위적 호황을 맞자 이를 토대로 수익을 내는 ELS까지 다시 투자자들의 주목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장기간 이어진 증시 활황에 힘입어 ‘조기 상환’을 달성한 고객들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ELS 발행 금액은 12조7799억원으로 집계돼 직전 2분기(11조7789억원)보다 8.5%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35.9% 증가했다. 발행 종목 수도 3752개로 직전 분기(3247개) 대비 15.6%, 지난해 3분기 대비로는 20.4% 각각 늘었다. 미상환 발행 잔액은 지난해 3분기 48조1489억원에서 올해 3분기 54조2076억원으로 1년 사이 12.6% 불어났다.

증가세는 4분기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ELS 발행 금액은 4조3817억원으로 직전 9월(4조9750억원)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4조원대를 유지했다. 1년 전 같은 달(3조4693억원)과 비교하면 26.3% 증가한 액수다. 이들 통계에는 모두 ELS와 개념상 유사한 상품인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가 합쳐져 집계돼 있다.

ELS는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증권 상품이다. 주로 코스피200이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유로스톡스50 등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이 기초자산의 가격이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원금에 더해 최대 10%대의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향후 증시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발행 규모와 수요도 덩달아 커지는 구조다.

한동안 ELS를 바라보는 국내 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ELS의 단점은 기준 이하로 기초자산의 가격이 내려가면 약속된 수익률은커녕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 발생한 홍콩 H지수 사태는 이 같은 위험성을 투자자들에게 똑똑히 각인시켰다. 2021년 1만2000선까지 올랐던 홍콩 H지수가 이후 5000선까지 떨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17만건,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위험이 구체화한 이후 ELS 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ELS 발행 규모는 55조2700억원(1만2014개 종목)으로 집계돼 발행 금액과 종목 수 모두 2020~2024년 중 가장 적었다.

하지만 올해 2·3분기 동반 호황을 맞이한 국내외 증시가 ELS 시장의 ‘구원자’로 등장했다. 특히 코스피는 지난달에만 19.9%가 치솟으면서 ‘4000피’를 달성했고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의 누적 상승률이 70.3%에 이른다. 미국 나스닥과 S&P500 지수도 지난달 27일까지의 누적 상승률이 각각 20.2%, 15.5% 수준이다.

ELS 시장 역시 국장의 급등세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기준 코스피20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종목 수는 1년 전보다 15% 증가했다. 최근 ‘10만 전자’를 달성한 삼성전자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는 최근 다시 발행 상위 10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 주식의 지속적인 강세도 ELS 반등에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해외종목형 ELS 판매 증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하는 등 ELS 판매 증가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주식 시장의 호조와 변동성으로 인해 ELS의 매력이 커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현장 역시 ELS의 되살아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ELS 발행 금액은 리테일 공모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7% 늘었다. 한편 이번 ‘재흥행’ 국면에서는 은행이 아닌 증권사가 주요 유통 채널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홍콩 H지수 사태 이후 ELS 판매가 잠정 중단된 주요 은행들은 아직 판매를 재개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만기보다 이른 시기에 수익을 실현하는 조기 상환도 급증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ELS 조기 상환 규모(원화 기준)는 2조1645억원으로 집계돼 올해 들어 처음 2조원 고지를 밟았다. 지난 1월만 해도 6780억원으로 연중 최저치에 머물렀던 조기 상환 규모는 3월(1조3155억원)을 기점으로 1조원대를 회복해 9월에 이미 1조8730억원까지 반등한 상태였다.

조기 상환은 보통 6개월마다 이뤄지는 중간 평가 시점에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요건을 충족했다면 만기 전이어도 약정된 수익을 지급해주는 제도다. 주로 시장 상황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투자심리가 안정될 때 실현된다. 이를 통해 원금을 불린 투자자들이 다시 ELS 상품에 롤오버(재투자)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ELS 투자를 결정할 때는 여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들이 한창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상황에서 진입하면 이후 가격 조정기가 왔을 때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진입 시점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ELS 투자에서는 상품 진입 시점과 금액의 분산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같은 기초자산과 같은 구조를 지닌 ELS라 하더라도 상품에 진입하는 시점과 금액을 분산해서 투자한다면 더 안정적으로 투자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