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여명 6개월… 카티 치료만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다

입력 2025-11-04 00:12
여러 선행 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재발한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기대여명이 6개월에 불과하다. 이들에겐 ‘즉시 투여’가 가능한 이중항체 신약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어 신속한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클립아트코리아

면역세포 치료제 카티만 건보 적용
시설 운영 의료기관 10여곳 불과
환자들 최대 45일 대기하는 실정
즉시 투입 가능한 이중항체 신약
의사들, 신속한 급여화 정책 요구

“생사의 기로에서 기다릴 시간이 없거나 다른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즉각 투여가 가능한 ‘이중항체 신약’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악성 혈액암 환자들에 전문가들이 마지막으로 권고하는 치료다. 이름조차 어려운 ‘재발·불응성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DLBCL)’ 얘기다. 1·2차 치료에 반응이 없고 재발한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기대여명이 6개월에 불과하다.

최근 다양한 기전의 신약이 허가됐으나 3차 이상 치료제로 국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면역세포 치료제인 ‘카티(CAR-T)’ 뿐이다. 문제는 카티 치료를 받으려면 최대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하는 데다 치료 가능한 의료기관은 주요 대학병원 10여곳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치료 병원이 수도권에 몰려있고 지방엔 단 2곳에 불과해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한시가 급한 환자들에겐 희망고문일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적극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이중항체 신약에 하루빨리 건보가 적용돼서 더 많은 사람이 소중한 생명을 이어가길 바란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여러 차례 치료 실패 환자들의 선택지

3일 의료계, 보건당국에 따르면 DLBCL은 목 등의 림프 조직에 발병하고 위장관이나 뼈, 중추신경계, 갑상샘 등 여러 장기를 침범한다. 악성 림프종 중 가장 흔한 유형이다. 6개월 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10% 넘게 체중이 빠지거나 38도 이상 고열이 지속하거나 잠잘 때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 등의 증상이 있으면 의심할 수 있다.

해당 질환은 초기 치료로 약 60%의 환자가 완치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약 30%는 재발하며 약 10%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치료에 실패한 이런 재발·불응성 환자는 평균 기대여명이 6.3개월에 그친다. 따라서 즉각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연간 2100여명의 DLBCL 발생 환자 가운데 3차 치료가 필요한 재발·불응성 환자는 340여명으로 추산된다. 환자 수는 적지만 최근 등장한 혁신 신약들은 보험이 안 될 경우 약값이 매우 비싸서 환자 부담이 크다.

현재 DLBCL 환자의 1·2차 치료에 실패한 경우 3차 치료로 권고되는 약물은 카티 치료제(킴리아)와 이중특이항체 치료제(엡킨리, 컬럼비)다. 카티는 추출한 환자 자신의 면역 T세포에 외부에서 암세포를 인식하는 유전자(CAR)를 장착한 뒤 다시 투입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도록 고안된 것으로, 2022년부터 건강보험이 되고 있다.

다만 카티 제작에는 특수 시설이 필요해 국내에선 서울대,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등 14곳(5월 기준)에서만 가능하고 울산대와 동아대병원을 빼면 모두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그 외 지역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또 대다수 환자가 카티 치료 전에 ‘가교 항암(카티 제조를 기다리는 동안 악화되지 않도록 항암)’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아울러 T세포 채취→해외 제조센터 배송 등에 3~4주가 걸려 최종 주입까지 1~1.5개월이 소요된다. 투약 후 최소 4주간은 부작용 등 우려로 치료 센터 주변 2시간 거리에 머물러야 한다.

카티 치료 ‘미충족 수요’ 채울 수 있어

다시 말해 카티 치료의 급여화로 환자들 비용 부담은 많이 덜어졌지만 여전히 미충족 수요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런 틈새를 메울 수 있는 것이 이중항체 치료제다. 이 신약은 암세포와 면역세포를 직접 연결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원리다. 즉시 투여가 가능한 완성품 형태의 치료제로 카티처럼 별도의 제조 기간이 필요하지 않아 기대여명이 6개월에 불과한 위급 환자들에게 즉각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즉 투여까지 2개월 가까이 기다리기 어렵거나 카티 치료 센터가 없는 곳에 사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임상연구(3년 추적 관찰)를 통해 이중항체 치료제의 임상적 유용성(반응률, 암이 완전히 사라지는 관해율, 무진행 생존율 등)과 안전성이 확인됐다. 현재 국내 도입된 2개의 이중항체 치료제는 모두 비급여로 환자 접근성이 낮은 실정이다. 그 중 엡킨리의 경우 지난 6월 급여화의 1단계인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으나 향후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 약가 협상 등의 산을 넘어야 한다. 미국, 일본과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선 이미 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엡킨리는 피하 주사 방식으로 몇 분이면 투여가 가능한 반면 컬럼비는 정맥 주사여서 병원에 몇 시간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엄기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엡킨리는 피하 주사로 기존에 여러 차례 정맥 주사 항암 치료로 혈관이 약해진 환자들에게도 부담이 적은 장점이 있다”면서 “카티 치료 이후 선택 가능한 옵션이 거의 없는 환자들의 현실에서 이중항체와 카티 치료제는 서로 다른 기전을 기반으로 치료 순서상 상호 보완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