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기술 인재 생태계 재설계 해야

입력 2025-11-04 00:30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이 ‘인재’로 이동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의 혁신은 기술 그 자체보다 인재가 성장하고 연결되며 정착하는 시스템의 힘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 인재가 배우고 협력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기술을 넘어 인재가 유입되고 성장해 정착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재 생태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향후 5년간 국내 연구인력은 약 5만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분야에서도 인구 1만명당 0.36명의 전문가가 순유출되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양적 부족과 질적 유출이 동시에 심화하는 ‘이중 위기’가 진행 중인 셈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재가 성장하고 순환해야 할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로 탐색에서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이 끊어져 있고, 청소년 단계의 이공계 기피, 톱티어 인재 발굴 체계의 한계, 대학 자율성 제약과 단기성과 중심의 연구·개발(R&D)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인재의 성장경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산업계의 참여는 미흡하고, 해외 인재 정착을 막는 제도적 장벽 또한 여전하다. 국내 인재는 성장의 길을 찾지 못하고, 해외 인재는 들어오지 못하며, 혁신 생태계는 내외부 순환이 막힌 폐쇄형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미비의 문제가 아니다. 부처별로 흩어진 사업과 경직된 기관 간 역할 분담으로 교육, 연구, 산업의 연결고리가 약화돼 있다. 단기 수요에는 대응하더라도 인재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선순환 체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재 양성과 활용 체계가 분리되면서 축적된 경험과 역량이 시스템 전반에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인재정책은 ‘양성’에서 ‘유입 연결 정착’으로, 양적 확대에서 지속가능한 순환체계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재 생애주기와 산업 가치사슬을 정교하게 연결해 교육 연구 산업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인재가 국내외를 오가며 배우고 연구하고 산업현장의 경험이 다시 교육과 혁신으로 환류되는 개방형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 중심에는 거버넌스 혁신이 있다. 현재 인재정책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부, 고용노동부 등으로 분산돼 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이 약하다. 부처 간 협업을 넘어 범부처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대학, 연구기관, 산업계가 공동 설계자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조정하고 촉진하는 조율자가 돼야 한다.

과학기술 인재정책의 본질은 단순한 인력 확충이 아니다. 인재가 성장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 그것이 국가 경쟁력의 출발점이다. 기술패권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인재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나라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