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의 경제 대국인 프랑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감세개혁을 통한 경기 부양책이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와 지속적인 재정 지출, 그리고 저성장 기조 등의 여파로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크게 악화된 상태다.
마크롱 행정부는 재정 건전화 차원에서 복지 축소를 단행하고자 했지만 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답을 찾지 못하는 프랑스의 재정 상황을 우려하며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와 S&P는 지난 9월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강등했고, 무디스는 향후 전망을 하향 조정하며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에 프랑스의 재정 불안이 2010년대 초반 유럽을 뒤흔들었던 재정 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유럽 재정 위기 당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4~5월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 위기는 봉합과 재발을 거듭하면서 2011년 그리스를 포함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를 지칭하는 ‘PIIGS’ 문제로 확산됐다. 이들 국가의 부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로존이 무너질 것이며, 유로존 통합에 근거해 만들어진 유로화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감으로 이어졌다. 다만 이런 내용을 토대로 볼 때 지금의 유로존 상황은 과거 재정 위기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유로존 전반으로의 재정 위기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과거 재정 위기 당시에는 그리스발 위기가 PIIGS를 거쳐 유로존 전체 국가로 번져나가는 수순이었던 반면, 현재 프랑스의 부채 불안은 다른 국가로의 전이 가능성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신용 등급은 강등된 반면 과거 재정취약국으로 분류되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신용 등급은 상향 조정된 점과 해당 국가들의 금융시장이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로존 전체로의 전이 및 확산, 이로 인한 유럽 재정 위기로의 발산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유로화의 움직임이다. 유럽 재정 위기 당시 유로화의 신뢰 상실 가능성이 언급되며 유로화 가치는 타격을 받아 유로·달러 패리티(1유로=1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최근 유로화의 움직임을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특히 원화 대비 유로화 환율은 1년여 전 1유로당 1500원 수준이었던 반면 현재는 1650원 수준까지 상승하며 되레 유로 강세 기조를 나타내고 있다. 유로화에서도 유럽 전체의 위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유럽 재정 위기를 겪어봤다는 경험치 역시 당시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그때의 충격을 기억하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년 전달보호기구(TPI)를 도입하며 특정 국가의 부채 위기가 유로존 전역으로 번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위기의 전이를 제한하는 안전망을 확보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있었던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프랑스의 문제가 전이될 가능성과 TPI의 사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크리스틴 라가라드 ECB 총재는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ECB 역시 현재의 프랑스 사태를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일본, 미국 등의 정부 부채 이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재정 위기와 같은 극단의 우려는 경계해야 하겠지만 점차 악화되는 국가 부채에 대한 과도한 낙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