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의 핵심 의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였다. AI는 첨단기술 분야를 넘어 국가 간 경제·외교 협력의 키워드로 부상했고 한국은 AI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할 핵심축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엔비디아와 한국 정부·기업이 ‘AI 동맹’을 결성하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투자·협력 발표가 이어지면서 이번 서밋이 ‘AI 3대 강국’을 향해 가는 교두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북 경주에서 3박4일간 진행된 APEC CEO 서밋은 역대 최대 규모의 세션과 거물급 연사들의 참석으로 APEC 정상회의 못지않은 화제를 모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가장 먼저 CEO 서밋의 특별연사로 나섰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 등 빅테크 리더들이 대거 참석해 무게감을 더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도 총출동해 경제외교 전면에 나섰다. 행사에 참석한 정상은 16명, 전 세계에서 모인 기업인은 1700여명에 달한다.
총 20개로 구성된 CEO 서밋 세션은 금융,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지만 AI 관련 논의가 단연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부대행사로 열린 ‘퓨처테크포럼: AI’를 포함해 업계 전문가들은 AI의 지속 발전을 위해 국가·기업 간 연대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서밋 기간 동안 빅테크 CEO들이 한국과의 대규모 투자·협력을 발표하면서 AI산업 허브로서 한국의 역할도 공고해졌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 등에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급 규모는 최대 14조원에 달한다. AI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GPU가 확보되면서 정부의 AI 3대 강국 구상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황 CEO와 이재용·정의선 회장의 ‘깐부치킨 회동’은 한국이 AI산업의 전략적 중심국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는 평가다.
AWS는 2031년까지 신규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50억 달러(약 7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추가 투자가 단행될 경우 아마존의 국내 총 투자 규모는 12조6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서밋 의장을 맡은 최 회장은 2일 개인 SNS인 링크드인에 “이번 서밋에서 모든 비즈니스 리더는 ‘AI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국가가 AI 경제에서 자리를 확보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AI는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엔비디아와의 협력에 대해 “한국은 AI 제조의 테스트베드(실험장)로서 이상적인 위치에 있으며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모델은 전 세계 제조업체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