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판결이 불붙인 ‘배임죄 폐지 논란’… 폐지땐 모두 면소될 수도

입력 2025-11-03 02:04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왼쪽)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민간업자들이 1심에서 업무상 배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여권에서 추진하는 배임죄 폐지 관련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배임죄가 폐지되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이 죄다 면소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법조계에서는 “배임죄가 유지돼야 할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판결”이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징역 8년의 중형이 선고된 주된 죄목은 업무상 배임 혐의였다. 특히 김씨에 대해서는 배임 행위로 얻은 재산상 이익 중 428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추징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형이 확정되기 전에 배임죄가 폐지되면 1심 판결 내용이 사실상 무효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배임죄 폐지 후 대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폐지 전 배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법이 폐지되더라도 기존 재판에는 그 효과가 미치지 않도록 하는 소급 여부도 논의되고 있지만, 피고인에게 유리한 신법을 구법보다 우선토록 하는 형법상 원칙을 고려할 때 기존 재판이 면소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1심 재판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재판장 조형우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선고 말미에 이례적으로 ‘배임죄 폐지’ 논의 과정을 언급했다. 조 부장판사는 “배임죄 완전 폐지는 부작용이 예상돼 처벌 가능한 영역을 유형화하는 대체 입법이 동반되는 것으로 보이고 입법까진 상당 시간이 걸린다는 기사를 봤다”며 “배임죄가 현존하는 한 피고인들을 구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1심에서 실형으로 법정구속까지 됐는데 면소되는 경우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법적 안정성이나 배임죄 필요성이나 폐지 부작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에 재판부가 우려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배임죄 존치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판례를 통해 배임죄가 남발되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만 적용되도록 범주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임죄를 아예 폐지하면 사회적 불신 풍조가 강해지고 기업 등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배임죄 폐지 추진이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피고인들과 이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판단하진 않았지만 “유 전 본부장은 성남시 수뇌부 승인 아래 중간관리자 역할”이라며 윗선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배임죄 폐지의 경우 장기간 사회적 논의나 새로운 법질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의 과정 없이 추진되다 보니 특정인을 위해 법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차라리 ‘대통령 구제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든지 해야지, 대통령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전체 형사사법 체계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