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가 500년 전 자국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겪은 ‘고통과 불의’를 인정하고 멕시코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앞서 멕시코의 사죄 요구를 스페인이 거부하면서 양국 관계가 경색된 지 6년여 만이다.
2019년 3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식민 통치와 정복에 따른 ‘학살과 억압’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500년 전 일을 현대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며 사죄를 거부했다.
하지만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무장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서 열린 행사에서 화해와 사죄의 뜻을 밝혔다고 1일 가디언이 전했다. 알바레스 장관은 멕시코 원주민 여성들을 주제로 한 전시회 개막식 연설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고통과 불의가 있었다”며 “오늘날 이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하는 게 올바르다. 우리 역사의 일부이고 이를 부인할 수도 잊을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스페인 측에 과거사 사과를 재차 촉구한 지 나흘 만에 나왔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사죄는 정부와 국민을 고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은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백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당시 아즈텍 제국 수도 테노치티틀란으로 진군하면서 시작됐다. 스페인 병사들은 천연두 등 질병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게 옮겼다. 스페인군은 2년 후 도시를 점령했고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