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일 경주선언을 채택하고 성황리에 폐막했다. 준비 부족으로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컸지만 민관이 총력을 기울인 덕분에 큰 국제행사를 기대 이상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과 주요국과의 양자 회담도 성과를 거둬 우호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고 외교적 불확실성도 상당히 줄였다. APEC을 잘 치러낸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회의는 관세전쟁과 무역보복 조치로 자유무역 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 협력에 대한 의지를 살리는 내용을 경주선언에 담았다. 자유무역 내용이 예년보다 축소되긴 했지만 당초 공동문서 채택 자체가 불발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한국의 물밑 중재로 합의가 도출됐다. 한국 주도로 인공지능(AI)을 통한 기술 혁신과 포용적 성장을 이루자는 ‘APEC AI 이니셔티브’가 채택된 것도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다.
APEC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이 성사돼 글로벌 무역전쟁이 숨고르기에 들어가게 된 점도 다행스러운 결과다.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낮추는 대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예하는 것으로 양측이 극적인 휴전에 들어갔다. ‘세기의 담판’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면서 ‘가교국’으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효과를 거뒀다.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국 정상들과의 양자 회담 성과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타결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관세 협상이 합의돼 대미 수출용 자동차 등의 관세가 내려가게 됐고, 핵추진 잠수함 추진 승인이라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11년 만에 방한한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고위급 정례 소통채널 가동, 70조원 규모 통화 스와프 계약 체결 등이 합의됐다. 우리 관심사인 한한령 해제, 서해 구조물, 한화오션 제재 문제도 논의됐다. 보수 우익 인사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셔틀 외교를 복원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결과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합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상대의 입장이 달라지거나 실질적인 이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관세 협상 등은 후속 회담을 서둘러 서로 설명이 다른 부분을 확실히 조율해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핵잠 추진에도 박차를 가해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진전이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과 논의한 한한령도 속히 해제 조치를 이끌어내야 하고, 서해 구조물 설치도 실제 중단돼야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진정한 실용주의 외교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