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삼성 호암미술관이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의 신작 공간 ‘실렌티움(묵시암)’을 전통정원 ‘희원’ 내에 개관해 4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그간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미술관 호수 주변의 ‘옛돌정원’에서 이우환의 조각 설치 작품 3점도 새롭게 선보인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은 1960년대 말 ‘모노하’의 이론적 형성에 깊이 관여하며 일본 동시대 미술의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단색화가 전개되는 과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과 일본을 넘어 유럽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다.
삼성문화재단은 “이 작가 작품을 오랜 기간 수집·소장해 왔으나, 2003년 호암갤러리·로댕갤러리 회고전 이후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본격 조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가 직접 제안한 것으로, 국제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의 예술 세계를 수도권에서 상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신작 ‘실렌티움’은 라틴어로 ‘침묵’(Silentium)을 뜻한다. 한국어 명칭인 ‘묵시암(默視庵)’은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다. ‘조용한 눈길로 만나는 공간’이라는 콘셉트 아래 실내 작품 3점과 야외 설치 1점이 하나로 어우러진 프로젝트다.
이 작가는 “내 작품은 봄과 동시에 울림이 있는, 보자마자 감각이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이나 에너지가 중요하다”며 “(관람객이) 침묵 속에 머물며 세상 전체가 관계와 만남, 서로의 울림과 호흡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렌티움’ 입구에는 무거운 돌과 두꺼운 철판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업 1점이 침묵과 사색의 공간으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실내로 들어서면 신작 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입구 왼쪽 방의 ‘플로어 페인팅’은 ‘점’이 극한의 우주, 무한까지 확장돼 이루는 ‘원’의 형태와 색채 변화로 생명을 표현해 마치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간 방 ‘월 페인팅’의 점은 이우환 예술 세계의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다. 극도로 절제된 붓놀림을 따라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이며, 미세한 색채 변화 속에서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만나 더 큰 조화를 이룬다.
오른쪽 가장 안쪽에 자리한 ‘쉐도우 페인팅’은 돌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와 작가가 그린 그림자를 함께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상상력이 중첩되는 지점을 드러내며, 현실과 환영, 욕망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희원’ 건너편의 호암미술관과 너른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얕은 구릉지 산책로 ‘옛돌정원’에서는 철과 돌이라는 문명과 자연이 만나 이루어진 3점의 대형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유료(2만5000원)이며 기획전과 희원, 실렌티움, 옛돌정원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