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23·끝) “누린 은혜는 하나님 선물, 그 모든 영광도 하나님 것”

입력 2025-11-04 03:03
심재덕 선수가 지난 9월 전북 장수에서 열린 장수트레일레이스 38k 부문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낯선 길을 나설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이라는 벽을 세운다. 특히 울트라 러닝처럼 온종일, 때로는 며칠 동안 이어지는 경주가 주는 공포는 상당하다. 어둡고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듯한 그 느낌은 겪어 본 사람만 안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처음부터 정상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이 먼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잘게 쪼갠다. 1000m 오르막이라면 200m씩 나눈다. 첫 구간을 오를 때 거기까지가 목표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짧은 목표를 세우고 또 한 걸음을 내디딘다. 이건 단지 달리기 요령이 아니다. 인생의 고비를 넘는 방법이기도 하다. ‘토막 난 희망’이라도 붙잡고 달리다 보면 결국 길이 열린다.

사람들은 달리기에서 다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세월이 쌓이자 어깨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달리기의 중심은 상체, 특히 어깨다. 어깨가 강건해야 호흡이 깊어지고 바른 자세가 나온다. 나는 매일 턱걸이로 어깨를 다듬었다.

신앙도 비슷한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주일 예배를 신앙의 중심이라 여기지만 실제 중심은 주중의 삶 속에 있다. 어깨가 온몸의 균형을 잡듯 삶의 예배가 믿음의 본질로 각인돼야 한다.

다시 어깨 이야기로 돌아가자. 턱걸이가 쉽지 않다면 끌어올리기 대신 팔을 쭉 펴서 매달려만 있어도 좋다. 차근차근 자신의 능력에 맞춰 횟수를 늘려 가되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 우리 목표는 턱걸이 달인이 아니라 건강하고 안전하게 오래 달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더러 건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약함이 나를 달리게 했다. 건강했다면 이 길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약함은 내 달리기의 출발점이었고 그 약함이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했다.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면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이제 충분하다고. 멈춰도 된다고. 그때마다 묻는다. “정말 멈추고 싶은 건 몸인가 마음인가.” 300번 넘는 마라톤을 달렸지만 고산지대에서는 수없이 무너졌다. 모든 멈춤이 패배는 아니다. 다음을 위한 용감한 포기도 있다.

달리는 사람마다 목표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기록을, 누군가는 완주를, 누군가는 그 길 자체를 사랑한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결과는 신의 영역이다. 우승하지 못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결승선에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과와 상관없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심으로 달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누린 모든 은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었고 그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마라토너가 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두 손 모으고 달려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 4:7~8)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