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신앙의 고향… 하나님 은혜·자비 흘려보낼 것”

입력 2025-11-03 03:02
허버트 카딩턴 선교사의 후손들이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라도 일대 6곳의 선교지와 옛 병원터 등을 방문했다. 사진은 전북 군산 전킨 선교사 도착 기념비 앞 모습. 최은수 교수 제공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한국인의 병상을 지키며 결핵 환자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역한 미국인 의료선교사. 사람들은 그를 ‘거지 대장’ ‘작은 예수’라고 불렀다. 광주기독병원을 재건하고 결핵 환자들을 돌보며 사역하는 가운데 자신의 월급을 반으로 나누어 가족과 빈민에게 각각 나눠준 미 남장로교 의료선교사 허버트 카딩턴(1920~2003·사진)의 이야기다.


카딩턴 선교사는 미 코넬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49년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했다. 간호사인 부인 페이지와 목포에 도착했고 이듬해 6월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란하여 제5육군병원에서 부상자를 치료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폐쇄됐던 광주제중병원(광주기독병원 전신)을 재개원하고 25년간 결핵 환자를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사역하는 동안 넷째 아들이 대천해수욕장에서 여덟 살 나이로 사망해 광주 양림동선교사묘역에 안장됐다. ‘거지 대장’이라는 수식어가 알려주듯 카딩턴 선교사는 선교편지 이외에는 자신을 위한 어떤 기록도 재산도 남기지 않고 의료와 구제에 온 힘을 기울였다. 카딩턴 선교사는 1970년대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자 한국보다 더 어려운 오지의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떠나 그곳에서 25년을 더 사역했다.

카딩턴 선교사의 후손 21명이 최근 그의 선교지였던 광주·전남 지역을 찾아 사역 현장을 순례했다. 이들은 “한국은 우리 신앙의 고향”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목회자와 선교사가 포함된 카딩턴 선교사 후손들은 광주·전남 일대 6곳의 선교지와 옛 병원터 등을 방문했다. 카딩턴 선교사 부부가 결핵 환자들에게 치료와 복음을 전하던 현장,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기도하던 교회, 환자들을 집으로 데려와 거처를 마련해주던 장소 등도 찾았다.

여정을 안내한 최은수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 연구교수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카딩턴 선교사 후손들의 방한은 목포 파송 76주년, 미 남장로교 호남 선교 133주년을 맞은 시점에 이뤄졌다”며 “전쟁과 가난 속에서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했던 선교사의 흔적을 따라 1대에서 4대에 이르기까지 가족 모두가 세속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예수님 닮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출생한 장남 허버트 유진 카딩턴 목사와 막내 루이스 카딩턴 선교사는 여정을 전후해 회고문을 남겼다.

허버트 유진 카딩턴 목사는 “한국에서 맡겨진 막대한 필요를 감당하기 위해 무엇보다 아버지는 영적 훈련에 깊이 헌신했다”며 “병원 언덕 아래 단풍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러한 영적 습관은 자녀들에게 경건한 모범을 따르고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깊은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아버지는 수천 부의 복음서 전도지를 길거리에서 나누었다”며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모이면, 병원 회진에 나서기 전 그들에게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전해주곤 했다. 어디를 가든 복음 전도는 아버지의 부르심과 열정이었다”고 전했다.

루이스 선교사는 “그 시절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는 지폐 뭉치를 반으로 나눴다”며 “절반은 어머니께 드려 우리가 먹고살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주머니에 넣고 길에서 만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 영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에게 집중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루이스 선교사는 시편 113편 7절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말씀을 읽을 때마다 부친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부친과 대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회고문을 마무리했다. “말년에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며 이런 질문을 하셨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복을 주셨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흘려보내게 하신 것이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