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제조업 경쟁력, APEC 경제 성과에 지렛대 역할했다

입력 2025-11-03 01:1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마지막 특별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경주=윤웅 기자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경제 성과를 이끄는 지렛대가 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한국에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약속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은 이번 APEC의 가장 실질적인 성과로 꼽힌다. 반도체와 조선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면은 반가운 일이다.

엔비디아의 GPU 공급은 단순한 칩 계약이 아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한국 제조 대기업들이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한 ‘AI 팩토리’ 구축 구상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계기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지목할 수 있었다. 26만장의 GPU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AI 제조강국’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이자, 한국 제조업이 디지털 전환의 주체임을 확인시킨 상징이다.

핵추진 잠수함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조선업은 이미 세계 선박 건조 시장의 60%를 점유하며 초격차 기술력을 입증해왔다. 원자력 추진체계나 군용 함정 건조 기술은 단순한 산업 역량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의 기반이다. 미국의 승인도 방위산업·해양플랜트·잠수함 설계에 이르는 전 공정에서 축적된 한국 기술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첨단 기술력과 동맹 신뢰가 결합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반도체와 조선, 두 축의 제조 경쟁력이 있었기에 세계가 한국을 전략 파트너로 대우했다. 제조업이 외교의 지렛대가 되어 가시적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번 APEC은 의미가 깊다.

과제도 적지 않다. GPU 공급과 핵추진 잠수함 협력은 아직 선언 단계다.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인력·인프라·규제 등 국내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의 자부심이 현실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기술·인재 육성과 공정한 생태계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체력을 지탱하는 근간이자, 미래를 여는 문이다. 단기적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이번 APEC을 산업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