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 과정에서 미국 역할론을 밝혔다. 휴전협정 당사자는 한국이 아닌 미국인 만큼 자신은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의미지만 ‘남한 패싱’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후 경북 경주의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한 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평화와 안정은 강력한 억지력도 전제로 필요하지만, 최종단계에서는 언제나 대화와 타협 공존·공영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싸울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확고한 평화”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언급했다. 그는 “북측이 여러 계기에 적대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이건 끝이다. 안 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변화의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보다 (북한의 적대적) 표현의 강도가 매우 많이 완화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설파했던 문재인정부와 달리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상황을 만들고, 대화를 요청하고, 소통·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 혼자만으로는 어렵다”며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중이고, 법적으로 휴전의 당사자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북한은 ‘한국이 아닌 미국과 협의해야 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며 “남북 간 대화만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이런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향해서도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협력과 소통의 계기를 많이 만들고 높여가려 한다”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 데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가 안정돼야 동북아도 안정되고,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첫 정상회담을 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았고, 걱정이 다 사라졌다. 아주 훌륭한 정치인”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그는 “일본 언론도 제가 당선됐을 때 ‘극좌’라고 걱정했을 텐데, 요즘은 안 하지 않느냐”며 “다카이치 총리 역시 개별 정치인일 때와 일본의 국가 경영을 총책임질 때 생각과 행동이 다를 것이고, 또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겠다.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방일 의사와 함께 회담 장소로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을 제안한 사실도 공개했다.
경주=최승욱 윤예솔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