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루브르 좀도둑?

입력 2025-11-03 00:40

고가의 미술품이나 유물은 훔치기보다 처분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프랑스 도둑 스테판 브라이트비치는 1990년대 유럽 박물관을 돌며 훔친 300여점을 전부 집에 걸어놓고 감상하다 붙잡혔지만, 대부분 돈 때문에 하는 짓이니 ‘진지한’ 도둑이라면 사전에 현금화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범죄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꼽는다.

①블랙마켓에서 실물 그대로 팔기. 뉴스에 보도된 장물을 사줄 간 큰 구매자들의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 ②유물에 담긴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은 떼어내 팔 수 있는데, 커팅 기법이 요즘 것과 달라서 들통 나지 않으려면 재가공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자가 많지 않으니 역시 네트워크부터 갖춰야 한다. ③돌려주고 보상금 챙기기. 박물관은 대개 도난 보험을 들어서 고가품이 사라지면 보험사가 더 열심히 찾으러 다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회수 보상금을 내걸곤 하며, 통상 도난품 가치의 10%이니 고가품일 경우 꽤 짭짤하다.

최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1500억원대 유물을 훔친 일당의 현금화 구상도 셋 중 하나일 것이다. 가장 큰돈을 욕심내면 ①,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것만 노린 걸 보면 ②, 워낙 비싼 걸 훔쳤으니 ③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가 붙잡혀 추가로 드러난 범행 과정을 보면 과연 이런 계획을 세우긴 했을까 싶다.

범행에 쓴 사다리차는 열흘 전 훔쳤는데, 이사를 의뢰하는 척 주인을 만나 열쇠를 슬쩍했다고 한다. 스스로 목격자를 만들어가며 준비한 것이다. 그 사다리차로 아폴론 갤러리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걸린 4분은 같은 수법의 ‘숙련된’ 절도범(통상 2분)보다 길었다. 그래서 허둥대느라 장갑도 헬멧도 떨어뜨렸고, 사다리차를 태워 흔적을 없애려 휘발유통을 준비했지만 불도 못 지른 채 달아났다. 지문과 DNA를 150개나 남겨서 그걸로 두 명을 잡고 보니 자잘한 전과자였다. 루브르가 아무래도 좀도둑한테 당한 것 같다. 처분 계획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면 훔친 걸 버리고 숨기도 한다는데, 어느 길바닥에서 왕관이 발견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