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마가 아닌 맛가

입력 2025-11-03 00:38

민주주의 최고봉 국가 미국
왕에 가까운 트럼프 대통령
진정 '위대한 길' 다시 찾길

지난달 폐막한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볼 만하다’고 입소문을 탔던 미국관에서 호감을 반감시키는 생경한 풍경과 마주쳤다. 입구를 따라 개별 볼거리로 이동하는 복도에 걸린 다수의 사진이 위화감의 정체였다.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 4월 개막 때만 해도 없었던 이 사진들은 지난 8월부터 갑자기 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례적인 ‘사진 자랑’에 현지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뒷말이 나왔다. “저개발 국가 중에는 비슷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미국이 이렇게 한다니”란 조소도 들렸다. 민주주의의 최고봉에서 독재국가의 편린을 발견하는 일이 부정적 인식을 부른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개입하는 방식을 보면 그리 놀랄 일이라고 보기 힘들다. 휴전에 돌입한 가자지구 전쟁과 캄보디아·태국 전쟁이 대표 사례다. 평화를 바란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중재’ ‘협상’이란 단어보다 ‘협박’이란 단어에 어울린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등에 업고 평화를 명령하는 그의 모습은 협상가라기보다 ‘왕(King)’에 가깝다. 노벨 평화상 수상 불발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은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왕처럼 군림하는 개인의 우월감을 노벨위원회가 무시하니 참기가 힘들었을 듯하다.

민주적 투표를 통해 권력을 쥔 그에게서 봉건시대 영주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은 비단 대외적인 모습에서만은 아니다. 불법이민·범죄 척결을 명분으로 자국민에게 군 병력을 동원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법원이 제동을 걸기는 했지만 미국 시카고는 주방위군 투입 조치를 목전에 뒀던 게 사실이다.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통제 조치가 언제든 동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꺼진 불씨로 보기 힘들다. 이에 더해 언론 통제도 서슴지 않는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뉴욕타임스 등 4개 주요 언론사에 기자실 퇴거를 통보했다. 국방장관의 사전 승인 없이 ‘미승인 기밀정보’ 보도를 할 수 없도록 서약하라고 요구한 것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대내외적 통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염원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과연 필요한 일인지 의문이다.

저의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 둔화와 투자·교역 약화로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성장률이 지난해 2.5%에서 올해 1.8%, 내년에는 1.5%로 둔화된다고 분석했다. 마가에서 ‘전가의 보도’가 된 관세가 미국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내 일자리 보호를 위해서라는 전문직 취업 비자 정책은 어떤가. 미국에 부를 안겨 준 구글 등 자국 기업들에 인재 영입 부담만 더 안겼다. 내부 정치 알력 싸움이 발화해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역시 이러한 정황 중 하나로 꼽힌다. 일반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미 워싱턴DC 관광 명소인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이 폐쇄된 점이 단적인 사례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일가는 돈방석에 앉았다. 올 들어 트럼프 일가가 관련돼 있는 코인 4종이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됐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달 초 기준 트럼프 일가 관련 코인들의 시가총액은 90억 달러(약 12조8763억원)를 상회한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라는 스티브 배넌이 미 수정헌법상 불가능한 ‘3선’을 언급한 점도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미국 정부가 마가가 아니라 트럼프만 위대하게 하는 ‘맛가’(MATGA·Make A Trump Great Again)를 추구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시쳇말마냥 ‘맛이 갔다’고 잘못 읽히지 않으려면 진정 미국이 위대해질 길을 다시 모색해보기 바란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