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고난을 대하는 시각

입력 2025-11-03 03:09

인생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 고통과 환난 아픔 근심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고난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난을 디딤돌로 삼아 더 힘차게 도약하고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일반적으로 내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지금 내가 어떤 영적 상태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선 사도 베드로가 그 당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로 인해 모진 고난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대하는 바른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나만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제일 많이 하는 한탄은 ‘와이 미(why me)’라고 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난에 빠지면 시야가 좁아져 자기 자신만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고난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정착해 25년간 자식이 없어서 고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사라와 하갈 사이에 적지 않는 다툼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항상 위태로웠습니다. 야곱도 삼촌 라반에 속아 14년 동안 종처럼 일했습니다. 이후 네 명의 아내와 아들 열둘, 딸 하나로 인해 심각한 사건이 많았습니다. 고난이 올 때 의기소침하거나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당하는 고난이고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둘째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잠깐 당하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고난에 대해 ‘잠깐’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물론 고난을 겪는 처지에서는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은혜의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서 고난과 영광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하는 잠깐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얻게 될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그 고난의 강도나 시간, 길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교훈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거든 참아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의 유익을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신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우쳐 겸손하게 만들고 기도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합니다. 이 구절에서 “온전하게 하시며”는 헬라어로 ‘카타르티조’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찢어진 그물을 깁는 것 같이 부실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완전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고난을 통해 다듬어지고 채워지고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고난이라는 연단과 훈련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해지며 더 귀하고 값진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유익과 미래의 결과를 확신하면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김만준 덕수교회 목사

◇서울 성북구 덕수교회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는 이웃과 함께’라는 표어 아래 화목함과 기쁨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또 복음의 은혜를 세상 속에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