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플랑크톤 성장 돕는 영양염
해수온 올라 표층으로 덜 올라와
개체수 줄어들어 광합성도 약화
바다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 저하
인류가 초래한 '또 하나의 위협'
해수온 올라 표층으로 덜 올라와
개체수 줄어들어 광합성도 약화
바다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 저하
인류가 초래한 '또 하나의 위협'
2018년 11월 2주 동안 해양조사를 위해 연구선에 올랐다. 서태평양 항해 중 만난 바다는 날마다 달랐다. 바다는 고정된 색을 가진 곳이 아니다. 바다와 하늘이 그려내는 색의 조화는 변화무쌍했다. 모든 변화의 근원은 빛이었고, 그 빛은 바다를 하루에도 여러 번 다른 얼굴로 바꿨다. 수평선 위아래로 번지는 색의 대비는 늘 경이로웠다. 구름이 가득한 날의 회색빛 바다는 잔잔한 위로를 건넸고, 햇살이 쨍쨍한 날의 청록빛 바다는 눈부셨다. 낮은 채도의 바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채도 높은 바다는 정신을 맑게 씻어냈다. 바다는 단순한 풍경을 내보이는 곳이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가 머무는 공간이었다. 바다를 본다는 것은 그 색을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일이다.
이렇듯 인간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인 바다의 빛은 예술가들에게 매혹적인 주제였다. 화가들은 색으로, 음악가는 음향으로 그 신비로운 관계를 표현해 왔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인식의 깊은 내면까지 드러낸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빛을 머금고 반사하며 계속 변하는 자연의 호흡을 담아내는 거울이었다. 모네는 차가운 청록빛과 회색 안개 위에 햇빛의 붉은 햇살을 얹어 따스한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형태보다 순간의 인상에 집중하며, 바다 위로 번지는 빛의 흔들림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포착했다. 한편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는 음악으로 그린 빛의 회화로 불린다. 그는 파도의 움직임을 묘사하기보다 빛이 수면 위에서 반사되고 굴절되며 만들어내는 미묘한 색채의 변화와 리듬을 소리로 표현했다. 모네는 색으로, 드뷔시는 소리로 빛의 변화를 포착하며 바다를 정지된 풍경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의 인상으로 그려냈다.
바다의 색을 과학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사진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시각 인식이 급격하게 변하던 시기였다. 미술사에 인상파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예술가들이 빛의 변화를 포착하려 했다면, 과학자들은 빛을 측정하려 했다. 항해의 안전과 해양 연구를 위해 물속에 밝은 물체를 넣어 투명도를 재던 실험에서 시작됐다. 1865년 지중해를 항해하던 여객선 임마콜라타 콘체치오네호에서 이탈리아 천문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인 안젤로 세키는 바다의 색을 보는 눈을 새롭게 열었다. 그는 여러 색과 크기의 원판을 바닷속으로 내려 수면 아래 빛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바다의 맑기와 색이 태양의 고도와 해상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세키는 흰색 원판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깊이를 기록했고, 이 측정 방법은 그의 이름을 따 ‘세키 깊이(Secchi depth)’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해양학에서 바다의 투명도를 재는 가장 기본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후 1960~7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바다의 색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물리·생화학적 신호로 보기 시작했고, 바다의 색은 햇빛의 파장과 물의 성질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결과임을 밝혀냈다. 햇빛이 바다에 닿으면 일부는 반사돼 눈부신 물결과 함께하고, 나머지는 물속으로 스며들어 흡수되거나 퍼지는 과정을 거친다. 바닷물은 빨강과 노랑처럼 긴 파장의 빛을 얕은 수심에서 먼저 흡수하고, 남은 짧은 파장의 파란빛을 산란시켜 파란색의 바다를 만들어낸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파란빛도 흡수되면서 빛은 거의 사라지고 마침내는 검은색에 가까운 어둠이 된다. 한편 흙과 부유물이 섞인 해역은 황갈색을, 플랑크톤이 풍부한 곳은 초록빛을 띠기도 한다. 서해 연안의 황토빛과 제주 함덕해수욕장의 에메랄드빛이 그 예다.
이제 바다색 연구는 우주로 시야를 넓혔다. 햇빛이 바다 표면에서 반사되고, 물속에서 흡수되거나 산란하는 과정을 감지할 수 있는 광학 센서의 개발로 인공위성을 통한 바다색 탐사의 시대가 열렸다. 인류는 더 이상 눈으로만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빛으로 바다를 읽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장별 관측 정보를 통해 플랑크톤의 양과 바다의 생산력, 나아가 해양 건강과 기후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바다색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수질 투명도, 적조 발생, 그리고 생물다양성 등 ‘해양 건강’을 진단하는 과학적 지표로 활용된다. 나아가 이러한 정보는 해저지형 측정과 연안 관리 등 여러 분야에서도 실용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바다색 정보로부터 새로운 경고를 전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영국 가디언지는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바다가 점차 녹색을 잃어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는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바다색 변화는 지구 생물권 생산성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물 플랑크톤의 감소와 관련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은 바다의 성층을 강화해 깊은 바다의 영양염이 표층으로 오르기 어렵게 하고, 그 결과 식물 플랑크톤의 성장을 억제한다. 이는 지구온난화가 바다의 생태계 기능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바다의 녹색 상태가 실제로 줄고 있으며, 해양 생산성이 저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과학적 증거다. 이는 인류가 초래한 또 하나의 위협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눈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모네가 그린 바다는 감정의 색을, 세키가 측정한 바다는 물리의 수치를 남겼다. 그러나 결국 바다는 빛의 변화를 품은 존재라는 같은 본질을 본다. 바다와 빛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바뀌고 있다. 녹색을 잃어가는 바다는 지구의 숨결이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빛의 경고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