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오늘 막을 내린다. 이번 회의는 자국 우선주의라는 뉴노멀 속에서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을 주제로 미래의 가치를 논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앞서 아태 지역 최대 민간 경제포럼 ‘APEC CEO 서밋’도 역대 최대인 1700여명의 글로벌 기업인들이 모이는 등 성황리에 어제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탄핵과 조기대선에 따른 촉박한 준비 일정에도 불구하고 실추된 국격을 회복하고 외교적 위상과 경제적 이익을 키우는데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이다.
회의 직전까지 성공을 확신하긴 어려웠다. 미국의 동맹에 대한 강압,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립구도가 여전한 변수였다. 한·미 정상회담은 관세협상의 타결 여부가 막판까지 불투명해 불안감을 안겼다. 하지만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며 핵심 쟁점인 대미 투자금 분할 납부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특히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뜻 승인하며 안보 동맹의 위상을 확인한 건 놀라운 반전이었다.
미·중 정상회담은 글로벌 무역 전쟁의 돌파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세와 희토류 제재를 완화하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앴다. 한·일 정상회담은 다카이치 사나에 새 총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셔틀외교 복원에 동의했다. 오늘 대미를 장식할 한·중 정상회담도 상호 협력·교류 활성화의 뜻을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상회담 파행 우려가 가시며 협력, 유대, 공존의 APEC 정신이 부각된 게 어쩌면 이번 정상회의 최대 수확이 아닐까 싶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제공, 아마존 등의 13조원 규모 투자 발표가 이어진 것도 희소식이다. 글로벌 첨단 기업들과 손잡음으로써 인공지능(AI) 시스템 구축을 촉진시킬 기회가 온 셈이다. 다만 APEC의 성과에만 안주해선 안 된다. 미·중 등 강대국 간 관계가 봉합되긴 했지만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갈등이 재점화 할 수 있다. 주최국으로서 맡은 균형자, 조정자의 역할처럼 향후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또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관세전쟁에서 보듯 어떤 파고에도 휘둘리지 않도록 경제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지원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