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깐부

입력 2025-11-01 00:40

“우리는 깐부잖아. 기억 안 나? 우리 손가락 걸고 깐부 맺은 거. 깐부끼리는 니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서 선량한 노인으로 보이는 오일남은 죽음의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도 동료애를 강조하며 ‘깐부’를 언급한다. 이 드라마가 유행하면서 깐부라는 단어도 널리 알려졌지만 유래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런데 친한 친구나 짝꿍을 뜻하는 은어인 이 단어가 많은 신문에 ‘인공지능(AI) 깐부’란 제목으로 일제히 등장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호프집 회동을 했는데 장소가 ‘깐부치킨’ 매장이었다. 황 CEO는 국내 대표적 기업인들과 치킨을 먹고 ‘소맥’을 마시는 모습으로 한국에 대한 친근함을 어필했다. 깐부의 뜻을 아는지 기자들이 묻자 그는 “친구들과 치킨·맥주를 함께 즐기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깐부는 그런 자리에 딱 맞는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깐부의 뜻을 알고 있었던 셈인데 엔비디아 측은 이런 점들을 감안해 해당 매장을 회동 장소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호프집 회동 후 열린 자사 제품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서도 엔비디아의 성공이 e스포츠와 한국 덕분이라며 인연을 강조했다. 황 CEO는 31일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내용을 발표했다.

오징어게임 마지막 부분에서 오일남이 재미를 위해 돈을 미끼로 가난한 이들을 죽음의 게임에 참가하도록 한 악인임이 드러난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 주인공 성기훈에게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고 묻는데 성기훈은 올해 공개된 오징어게임 세 번째 시즌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오일남처럼 친밀함을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악인인 경우도 많고, 사업이라는 게 사람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임을 알지만 황 CEO의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황 CEO와 이 회장, 정 회장이 오래도록 깐부로 남기를 기대한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