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산업계 전반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철강업계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25%였던 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한 자동차나 무관세를 적용받게 된 제약·바이오 업계와 달리 철강·알루미늄 등에 부과된 50% 고율 관세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지금 철강은 (관세율이) 50%로 돼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에 더 요청해야 할 사항”이라며 추가 협상 여지를 열어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당장의 관세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미국의 철강 산업을 재건하고 있다”며 “제철소들이 다시 문을 열고 대량의 철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가 안보와 관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철강 고율 관세를 안보 문제와 연결 지으며 당분간 현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조선 등 철강 수요 업계가 부담을 덜은 것만으로 우선은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철강업계 앞에 놓인 상황은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다. 당장 국내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수요 부진이 발목을 잡고 있다. 신용평가업체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낸 철강산업 점검 보고서에서 “수요 측면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건설업 불황이 내수 철강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사비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여건 악화 등으로 실제 건설공사 중 완료된 공사량의 가치를 나타내는 건설기성은 지난해 5월 이후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정부가 최근 중국·일본산 철강제품 일부에 대해 반덤핑 관세의 칼을 빼들었지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시장 잠식은 여전히 부담이다.
게다가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에 따라 기업이 부담할 탄소 배출권의 유상할당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별로 연간 수천억원의 배출권 구매 부담을 지게 될 거란 관측마저 나온다. 미국에 이어 최대 수출처인 유럽연합(EU)까지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하기로 하면서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온 철강 수출은 회복을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8월 여야 의원들이 철강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담은 특별법(일명 ‘K-스틸법’)을 발의했지만, 이 법은 해당 상임위원회 소위에 회부된 이후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