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관세협상에서 대미 현금 투자를 연 200억 달러(약 28조5640억원)로 제한하면서 외환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매년 200억 달러가 빠져나갈 경우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투자 상한으로 설정한 연 200억 달러는 정부가 보유 외화를 줄이지 않으면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로 평가된다. 앞서 3500억 달러라는 대미 투자 총액을 두고 한국은 대출과 보증을 포함한 것으로 설명하고, 미국은 전액 현금으로 이해하면서 협상이 오랜 기간 지연됐다. 한 해 투자 한도는 한국에 앞서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한 일본은 받아내지 못한 안전장치다.
일단 연 200억 달러는 외화자산 운용수익만으로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은행의 외화보유액 4220억 달러 중 3784억2000만 달러는 유가증권인데 여기서 연 5.3%의 수익이 나면 200억 달러를 구할 수 있다. 올해와 달리 증시 수익률이 낮아 모자랄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끌어온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또 외화자산 운용수익의 경우 현물환 시장을 거치지 않아 외환시장에도 긍정적인 재료라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시장 충격 없이 부담할 수 있는 액수가 200억 달러라고 말했던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굉장히 잘된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했을 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순 없다고 전망한다. 매년 30조원 가까운 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만큼 원화 약세가 굳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상향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외환담당 연구원은 “현물환 시장을 거치지 않는 달러 유출이라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상승과 외국인 자금 이탈 확대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환율을 간접적으로 올릴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특정 국가의 파산 위험을 사고파는 금융 파생상품인 CDS는 외화 조달력이나 대외 취약성 변동에 민감하다. CDS 프리미엄 상승은 국가의 부도 위험이 커졌음을 의미해 자금 유출을 유발할 수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주식시장에 국내외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환율 상승분 중 1420원부터 1440원까지는 외국인의 코스피 투자 규모를 웃도는 한국인의 해외 투자 때문”이라면서 “환율이 1400원 밑으로 내려오려면 이런 수급 불균형이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