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나흘째인 30일 오후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불리며 카페와 음식점, 기념품 상점이 몰려 있는 이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종일 북적였다. 성공적인 국제 행사를 위해 선뜻 자원봉사에 나선 경주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비토 소렌티노(65)씨는 “15일간 한국 곳곳을 여행 중인데, 마침 경주에서 APEC이 열린다고 해서 들렀다”며 “불국사와 국립경주박물관 등 유적지와 볼거리가 많아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계엄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었지만 막상 와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이 즐거운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캐나다인 관광객 엘렌 헤이즈(27)씨는 “평소 K문화에 관심이 많아 방문했다”며 “특히 한국 화장품이 좋다고 해서 한가득 쇼핑했다”고 말했다.
거리를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황리단길 상권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28)씨는 “한 달 사이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고 매출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여행 플랫폼 ‘클룩’에 따르면 이달 1~23일 해당 플랫폼에서 외국인 이용자의 경주 및 부산행 고속버스 예약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5% 늘었다. 반면 APEC으로 인한 도로 통제 탓에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분식집 사장 박모(55)씨는 “딱히 APEC 특수를 누리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처한 시민들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영어 통역 봉사에 나선 대학생 김모(24)씨는 “나라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뿌듯하다”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어서 영어 실력을 높이는 기회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APEC 준비지원단에서 선발한 국내 자원 봉사자들은 254명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이 지역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 200명도 주요 관광지에서 통역 및 안내 자원봉사를 맡았다.
환경미화 봉사를 맡은 시민들은 거리와 행사장 곳곳을 청소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상회의 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인근 푸드트럭에서는 행사 기간 일회용품 쓰레기가 쏟아졌지만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쓰레기들은 제때 수거되는 모습이었다. 황리단길에서는 노란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 봉사자들이 연신 거리를 쓸고 있었다. 강모(62)씨는 “전 세계 정상이 한국을 찾는 만큼 경주의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자원했다”며 “APEC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한국의 문화가 긍정적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