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화해의 선교 44년 “복음은 한일 묶는 힘”… 양국간 영적 다리를 놓다

입력 2025-10-31 03:00
요시다 고조 서울일본인교회 목사가 지난 28일 한국에서의 44년 사역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재활병원. 요시다 고조(吉田耕三·84) 서울일본인교회 목사가 휠체어를 타고 기자를 맞이했다. 뇌출혈로 입원한 탓에 혼자 거동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흐릿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복음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의 눈빛이 또렷했다.

“화목이란 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걸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말을 이어갔다. “복음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 힘입니다.”

44년 전 사죄와 화해를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요시다 목사는 두 나라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을 해왔다. 서울일본인교회 담임목사로 그리고 양국 화해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로 사역했다.

194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요시다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 속에서 자랐다. 자연스레 ‘전쟁 책임’과 ‘화해’라는 주제를 마음에 품었다. 청년 시절 신앙을 갖고 도쿄크리스천칼리지(현 도쿄기독교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태평양방송협회와 나고야 근교 모모야마교회에서 사역했다.

요시다 목사의 삶이 방향을 튼 건 70년대 한국 방문이었다. 교회에서 휴가를 얻은 그는 74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주최한 ‘엑스플로 74’ 선교대회에 참가했다. 연인원 수백만명이 찬양과 기도로 광장을 가득 메운 장면을 마주했다. 복음이 먼저 들어왔지만 여전히 냉랭한 일본과 달리 한국교회의 신앙 열정은 그에게 도전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1~2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교회와 선교지를 답사하며 공부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경기도 화성 제암교회 학살 사건 현장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고통과 죄의 현실을 마주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깊이 회개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두 나라의 화해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81년 요시다 목사는 아내, 두 딸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파송을 받아 서울에 정착한 그는 ‘사죄와 화해의 선교’를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일본 교인들의 한국교회 방문을 이끌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바른 청산을 호소해 왔다.

요시다 목사를 포함한 일한친선선교협력회 목회자들이 2019년 경기도 화성 제암교회에서 용서를 빌고 있는 장면과 요시다 목사의 과거 인터뷰 모습. 국민일보DB

특히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배상, 역대 정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규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며, 이를 강요한 일본인은 한국인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오랜 세월을 보낸 요시다 목사는 곧 한국을 떠난다.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돌봄 속에 재활을 이어왔지만 장기간 치료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다음 달 중순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화해의 사명은 그의 딸 히라시마 노리코 전도사와 사위 히라시마 노조미 목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한국에 올 때 ‘평생 한국에서 살겠다,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왔다. 이번 귀국은 그런 결심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잠시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앞으로는 일본에서도 그 사역을 다른 방법으로 이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병상에서도 요시다 목사는 ‘화목’의 복음을 붙들고 있었다. “우리는 ‘사죄와 화해’의 사명을 가지고 한국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화목이란 다툼이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한 나라만의 결심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두 나라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평생 의지해 온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요시다 목사는 잠시 침묵한 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읊조렸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이다.

“이 말씀은 제 사역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화해를 이루셨기에 우리도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