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부동산 심리’의 형성, 그 40년의 과정

입력 2025-10-31 00:50

인플레·외환위기·정책 부작용
40년 겪으며 굳어진 집단 심리가
부동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정부, 단기적 대책 조바심 버리고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이런 심리를 대체할 수 있도록
긴 호흡의 로드맵 세워야

천정부지로 치솟던 금값이 5% 넘게 떨어진 지난 21일 인도에선 디왈리 축제가 열렸다. 축제 기간 금시장이 휴장하며 결혼 시즌을 앞두고 금을 사려는 인도인 행렬이 멈추자 뉴욕거래소 금값이 폭락했다. 인도는 세계 금 수요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이 8000t인데, 인도 가정에 2만5000t이 있다고 한다. 이런 금 선호는 힌두교 관습에서 비롯됐지만, 국제 시세를 좌우할 만큼 증폭시킨 건 정책 학습효과였다. 1978년과 2016년 전격적인 화폐개혁에 지폐가 종잇조각이 될 때 수중의 금은 아무 탈 없이 인도인의 자산을 지켜줬다. 정부의 화폐 정책에 연거푸 뒤통수를 맞으면서 금에 대한 믿음이 ‘신앙’이라 불리도록 커진 것이다.

인도인이 금을 믿는다면, 한국인은 집을 믿는다. 부동산 불패, 영끌 매수, 똘똘한 한 채 등 변천을 거듭해온 조어가 그 믿음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부동산 집단 심리가 형성된 과정은 얼추 40년을 잡아야 할 것이다. 역시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점에서, 정책의 부작용이 곳곳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인도의 금 심리와 다르지 않다. 1970년대까지 “얹혀살지 않을 내 집”을 갈구하던 생각이 “아파트는 오늘이 제일 싸다”로, “열심히 일해야 잘산다”던 믿음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자”로 바뀐 인식의 전환은 1980년대 시작됐다.

산업화의 결실이 도시에 집중되던 시절,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든 서울에 정부는 집을 지어야 했다. 강남이 개발되고 목동의 벌판이 아파트로 바뀔 때 고도성장에 수반된 물가상승률은 20%에 육박했다. 은행 이자가 10%를 웃돌던 때지만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였고, 주택 공급의 더딘 속도가 도시의 팽창을 따라가지 못한 집값은 서울올림픽 무렵 한 해 30%씩 뛰었다. 잘사는 길이라 믿었던 저축에 배신당한 한국인은 그것을 대신할 집의 자산 기능을 발견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어지게 했다. 기업이 망하고 증시는 무너지고 은행이 문 닫을 때 부동산은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잠시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값은 불과 3~4년 새 위기 이전의 배로 올랐다. “돈은 사라져도 집은 남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던 시기에, 경기 부양이 급했던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었다. 주택담보대출의 문이 넓어져 ‘빚내서 집 사는’ 일이 보편화하면서 저축을 대신해 부채가 미덕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때까지 금융을 믿지 못해 집을 믿던 심리는 이후 정책이 못 미더워 집을 더 신뢰하는 추세로 바뀌어갔다. 외환위기 후 집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노무현정부가 주목한 건 그런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이를 풀어주려 집에 대한 수요를 투기로 규정하고 각종 세금과 숱한 규제를 도입하며 억제 장치를 쌓았지만, 집값은 거꾸로 폭등을 거듭했다.

이는 박탈감을 오독한 결과였다. 그것은 ‘나도 그런 집을 갖고 싶다’는 심리여서 집에 대한 믿음과 수요의 거대한 덩어리는 그대로 있었고, 오히려 기회의 문이 좁아져 더욱 간절해지니 집값이 잡힐 리 없었다. 노무현정부의 방식을 더 거세게 밀어붙인 문재인정부에선 그런 박탈감이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산다”는 조바심으로 증폭돼 영끌 심리를 낳았다. 두 정부가 나란히 실패하면서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에 곁가지가 추가됐다. “진보 정권에선 집값이 뛴다.”

사실 수요와 공급을 놓고 보면 반대가 돼야 맞다. 주택 공급은 몇 년이 걸리는 과정이니, 진보 정권에서 규제를 강화해 공급이 줄면 몇 년 뒤 보수 정권의 집값이 올라야 하고, 보수 정권에서 공급 확대를 외치면 다음 진보 정권이 수혜를 봐야 한다. 거꾸로 ‘진보=상승, 보수=안정’의 정반대 등식이 성립한 건 경제의 원리보다 심리가 부동산 시장을 좌우하고 있음을 뜻한다. 집값 규제는 어차피 몇 달짜리여서 되레 오를 거라 믿고 즉각 반응하는 식의 집단 인식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됐다.

지금 이재명정부가 마주한 부동산 문제의 외형은 집값이지만, 정작 상대해야 할 본질은 이런 심리일 것이다. 인플레와 경제 위기를 거치며, 정책의 반복된 부작용을 겪으며 40년간 다져진 것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다. 단기적 처방은 오히려 더욱 조장할 위험이 크고, 벌써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조바심을 버리고, 오랜 세월 형성돼온 부동산 심리를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대체하도록 긴 호흡의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