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이 2차대전 중 크게 놀란 것 중 하나가 독일 디젤잠수함 U보트의 위력이었다.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는 후일 “전쟁 중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U보트였다”고 말했다. 미국도 특급 잠수함의 필요성을 실감했고 1954년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 USS 노틸러스를 선보였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한 잠수함 이름을 따왔다.
이후 핵잠은 무제한에 가까운 작전 능력, 은밀한 수행 기능 때문에 군 전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59년 중·소 분쟁을 겪던 마오쩌둥 주석은 “1만년이 걸리더라도 핵잠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위력이 드러난 건 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에서였다. 영국 핵잠 4척이 본토에서 1만5000㎞ 떨어진 포클랜드에 2주만에 진입한 뒤 아르헨티나 유일의 순양함이자 자존심인 헤네랄 벨그라노호를 격침시켰다. 전세가 이때 기울어졌다.
주변에 강대국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우리나라도 지정학적 위협이 생길 때마다 잠수함 전력을 꿈꿨다. 닉슨 독트린으로 동북아 안보환경이 변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73년 자주국방을 내걸며 잠수함 건조를 지시했다. 핵잠 건조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시도했다. 역시 중국과 일본의 해양 전력 부상에 따른 자주국방 차원에서였다.
29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의 핵잠 보유 의사를 피력했다. 북한·중국 잠수함 추적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토로한 뒤였다. 놀라운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했다는 점이다. 박정희, 노무현정부 시절 매번 비토를 놓고 좌절시켰던 미국의 반전이다. 99년 개봉한 영화 ‘유령’은 정부가 경협 차관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극비리에 받은 핵잠(유령호)에 대한 얘기다. 정부가 미국과 일본의 압력으로 핵잠 자폭 계획을 세우다 내부 반란이 일어나고 결국 유령호가 침몰한다. 영화에서처럼 핵잠에 관한 한 미국은 우리의 발목을 잡았었다. 동북아 정세 급변도 있겠지만 한국 조선의 위상이 미국을 움직인 것 아닌가 싶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