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진 루터, 그 오해와 진실을 말하다

입력 2025-10-31 03:05
가톨릭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로마가톨릭의 면벌부 판매에 반기를 들었다가 독일 황제에게 보름스 제국회의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는다. 루터는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오직 믿음’을 설파했다. 이 장면을 묘사한 화가 안톤 폰 베르너의 ‘보름스 회의의 루터’. 위키미디어 커먼즈

무신론자, 이단아, 과학 혁명의 반대자, 반유대주의자….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사후 얻은 비평이다. 종교개혁의 대표 표어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조차도 교회사 가운데 종종 오용되거나 쟁점에 휘말리기도 했다. 종교개혁일을 맞아 루터와 종교개혁 표어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신간 두 권을 소개한다.

독일 비텐베르크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이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긴 역사적 도시다. 이 도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2008년 행사부터 ‘종교개혁 축제’ 대신 ‘종교개혁 기념일’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루터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가 함께 기억해야 할 기념일이라는 의미에서다.

루터교 신학자로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한 저자 한스 슈바르츠는 한 발 더 나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루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를 바꾼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루터는 교양 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루터/한스 슈바르츠 지음/최주훈 옮김/비아토르

그의 책 ‘모두를 위한 루터’(비아토르)는 독일 로마가톨릭 출판사 쉐닝의 제안을 받고 루터교인이 아닌 이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것이다. 슈바르츠는 “우리는 다른 교회 전통과 역사에 처참할 정도로 무지하다”며 “혹시 신실한 당신도 루터를 이단 혹은 교회 분열의 원흉으로 생각하진 않는가”라고 묻는다.

루터는 생전부터 사후까지 여러 소문과 악평에 시달렸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교리를 철회했다”거나 “침대 기둥에 목을 매달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슈바르츠 역시 한 가톨릭 사제에게 “애초부터 루터는 무신론자”란 말을 들었다고 술회한다.

슈바르츠는 이런 내용들이 “루터교뿐 아니라 현대 주류 로마가톨릭 신학자에 의해 강하게 반박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생애 마지막까지 루터는 로마교회가 그의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 교회가 생겨나는 현실을 괴로워했다”고 해설한다. ‘루터가 과학의 진보를 반대했다’는 주장 역시 “19세기 가톨릭 역사학자가 꾸며낸 얘기”라고 일축한다. 루터 생전 비텐베르크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강의했다”는 게 그가 제시하는 근거다.

루터의 반유대주의적 입장에 대해선 “나치 지도자가 그의 표현을 자기 사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루터는 신이나 성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약점을 가진 ‘시대의 인간’”이라고도 부연한다. 언어와 사상, 교육 및 복지 등 루터가 교회와 사회에 끼친 명암에 대해 가감 없이 기술한 ‘루터 입문서’로 손색없는 책이다.

종교개혁의 표어들/로버트 젠슨 지음/권헌일 옮김/비아

종교개혁의 표어들’(비아)은 ‘오직’으로 시작하는 종교개혁 표어의 오용으로 빚어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기술했다. 미국 루터교 신학자인 로버트 젠슨은 “역사 어느 시점에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교회는 제멋대로 떠도는 표어에 자유롭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행위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됐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종교개혁의 주요 표어이지만 종종 또 하나의 율법으로 여겨지곤 했다. 여기에 “믿음이란 새로운 행위를 요구하고 그 행위로 의로움을 얻는” 위험이 내포돼 있다는 얘기다. 이신칭의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믿음만 있으면 계명을 실천하는 행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허나 루터는 생전 십계명과 신조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젠슨은 루터의 말을 빌려 이렇게 답한다. “믿음은 계명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반대로 믿음은 계명에 기꺼이 순종하게 한다.”

저자는 ‘오직 성경’을 “모든 개신교 교파가 가장 즐겨 쓰는 표어이자 가장 문제가 많은 표어”라고도 말한다. 이 표어가 “주교제 등 교회의 제도와 구조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건 명백한 오용”이라는 지적이다. “성경이란 한 권의 책을 엮은 일 역시 주교제란 전통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성경을 살아있는 율법이자 복음으로, 도덕과 신학에 있어 최종 권위로 붙드는 건 맞지만 굳이 여기에 ‘오직’이란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책에는 이외에도 ‘율법과 복음의 구별’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있다’ 등 루터교 특유의 표어 해설과 오용 사례 등이 담겼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