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문제였다. 랜턴이 번개를 끌어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렀다.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다 넓적다리 근육에 통증이 왔다. 마라톤화가 앞으로 쏠리며 발톱이 들썩였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능력 이상의 힘을 쏟은 탓이었다.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었다.
제3구간 시작점인 코네(Cogne·102.1㎞)에 도착했을 땐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기록은 7시간18분, 순위는 8위였다. 그러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매니저로 동행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는 못 하겠어.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아.”
포기를 말했지만 속으론 아직 항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깨어나니 거짓말처럼 몸이 개운했다. 아직 대회 초반이고 8위라면 선두권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모든 게 끝이다. 나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뭐라 말할까. 그 뒷감당이 더 괴로울 것 같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우승이 아니라 완주가 목표였다. 꺼져가던 심지가 살아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내리막은 지옥과도 같았다.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오르막이 백배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4구간 돈나스(Donnas·148.7㎞)까지 평소라면 2시간 걸릴 거리였지만, 7시간이 걸렸다. 순위는 23위로 떨어졌다. 5구간, 6구간으로 이어지는 바윗길에서는 영혼까지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이른 새벽, 6구간의 마지막 오르막을 오를 때 허벅지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손끝의 감각도 발끝의 힘도 사라졌다. 산은 여전히 냉정했고 고통은 감정을 잠식했다. 네 번째 밤이었다.
마을 근처 완만한 경사길에 닿자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주저앉아 스트레칭을 해도 허벅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새벽의 찬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좀비처럼 한 걸음씩, 오로지 의지 하나로 걷다 보니 제7구간 시작점 올로몬트(Ollomont·283.5㎞)에 도착했다.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코스에 돌입했지만, 몸은 끝내 버텨주지 않았다. 출발한 지 1.5㎞ 만에 다리가 굳어버렸다. 그대로 길가에 주저앉았다. 일어설 힘조차 남지 않았다. 고산증이었다.
컷오프까지 56시간이 남았다. 하루를 푹 쉬면 완주할 수 있겠는데 귀국 비행기 시간은 23시간 뒤였다. 한 번만 더 문제를 일으키면 귀국도 불가능한 상황. 산에는 구급 차량이 오지 못하고 야간엔 헬기도 뜨지 못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했다. 결국, 출발했던 체크포인트로 돌아섰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283.5㎞에서 멈췄다. 우승은커녕 완주도 하지 못했다. 나도 연약한 피조물일 뿐이었다. 오래 쌓아 올린 의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거침없는 도전들도 하나님께서 이미 이뤄 주심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내려놓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심을 믿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