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0·15 부동산 안정화 대책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강력한 제재로 투기 세력을 근절해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였다. 정부는 전세 끼고 집 사는 사람, 집이 2채 이상인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봤다. 이들이 집값을 올리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곧바로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정부는 집값 안정화를 위한 선택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실질적 공급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책이 나온 지 불과 2주도 안 돼 ‘내로남불’ 논란이 터졌다. 그것도 정책 설계자들에게서 말이다.
이재명정부 ‘부동산 책사’로 불렸던 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의 배우자는 지난해 7월 분당 백현동의 한 아파트를 33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14억8000만원의 전세를 낀 계약이었다. 정부가 투기적 거래라고 규정했던 ‘갭투자’의 전형이다. 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라는 명분으로 규제를 외치던 인사가 자신은 그 규제에서 예외로 뒀다. “지금 집을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며 “집값이 안정되면 돈 모아서 그때 사면 된다”는 이 전 차관의 말은 국민들 공분을 샀다. 그는 해당 발언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집은 지켰다. 현재 해당 아파트 시세는 40억원에 달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013년 해외 파견 직전, 재건축을 앞둔 강남구 개포동의 아파트를 8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역시 전세를 낀 갭투자였다. 아파트가 2018년 재건축을 위해 철거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실거주한 적 없었다. 재건축 후 해당 아파트의 현 시세는 50억원에 달한다. 이 위원장은 “평생 1가구 1주택(다른 말로 실수요자)”이라며 “(갭투자는) 해외에 나가 국내에 체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했지만, 국민에겐 변명에 불과했다. 이 위원장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안다. ‘국민도 다 사정이 있다’ ‘갭투자 한 걸 뭐라 하는 게 아니다. 자기들은 해놓고 국민들은 못하게 투기꾼 취급하는 게 문제’라고 일침을 놨다.
안 그래도 10·15 대책 효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정책 설계자들의 이중적 태도는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깎아내렸다. 투기를 막겠다며 내놓은 대책의 설계자들이 정작 그 투기의 구조 속에서 이익을 얻고 있었다면, 국민이 정부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정책의 실패는 신뢰 붕괴에서 출발한다. 이미 정책의 도덕적 정당성과 사회적 설득력이 상당히 무너졌다.
화룡점정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다. 시민단체 활동 시절 다주택자를 법으로 금지하고 싶다고 했던 이 원장은 서울 우면동 소재 아파트 2채와 성동구 등에 상가 2채를 보유 중이다. 국정감사에서 내로남불 문제가 불거지자 아파트 2채 중 한 채를 자녀에게 양도하겠다고 했다가 이 발언이 다시 논란이 되자 매도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팔기 아까웠나 보다. 그는 아파트 1채를 최근 실거래가보다 4억원 비싼 가격에 매물로 내놨다. 처음엔 20억원에 내놨다가 이후 가격을 22억원으로 올렸다. 같은 평형의 한 달 전 실거래가는 18억원이었다. 계속된 비판에 이 원장은 다시 18억원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부동산 정책은 시장 기대 심리에 크게 의존한다. 이 원장이 4억원을 올려 내놓은 순간 시장은 ‘정부조차 집값이 더 오를 거라 보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금융감독 수장조차 4억원을 올려 내놓는데 집값이 떨어질까. ‘선택받은 사람만 규제를 피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일반 수요자는 더 조급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된다. 이 원장이 내놓은 아파트는 가격 재조정 후 곧바로 팔렸는데, 매수자는 싸게 샀다고 할지 모르겠다. 이미 4억원의 차익은 보장됐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황인호 사회2부 차장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