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혐오스럽지 않은 이 세상 마츠코들에게

입력 2025-11-01 03:09 수정 2025-11-01 03:09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주인공 가와지리 마츠코(나카타니 미키 분)가 밝게 웃으며 춤을 추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절을 묘사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또다시 버림받는다. 디스테이션 제공

일본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20대 청년 쇼는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돼 어느샌가 가족에게도 잊힌 존재였던 고모 마츠코가 살해된 채 발견됐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홀로 은둔하던 고모는 이웃들에게 ‘혐오스러운 마츠코’라고 불렸다. 유품을 정리하며 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자 마츠코의 일생과 마주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에서 그려진 마츠코의 일생은 이토록 비참한 인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몸이 허약한 여동생만 편애하는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어린 마츠코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중학교 교사가 돼 인생의 황금기를 누린 것도 잠시, 제자의 거짓말에 억울하게 해고당하던 순간에도 마츠코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더는 익살스러운 표정에 웃어주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탓인지, 궁지에 몰리면 익살스러운 표정이 저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가출한 이후 마츠코의 일생은 굴곡진 삶 그 자체였다. 작가 지망생으로 술을 마시고 나면 폭행을 일삼는 동거남은 자살했고 이후 만난 내연남은 마츠코를 이용만 하고 버렸다. 결국 몸까지 팔게 된 마츠코는 기둥서방을 두게 되지만 그마저 자신을 배신하자 그를 살해한다.

2006년 개봉한 이 영화가 최근 다시 소환된 이유는 어느 작가의 죽음 때문이었다.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작가가 지난 16일 뇌사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한 장면을 올리곤 이렇게 적었다.

“마츠코의 삶은 누적된 상처와 학대, 외로움의 점철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포기한 적은 없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감히 그녀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패배자’로 낙인찍을 수 없다. 그게 슬프면서도 마음에 쏙 들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사람과 건강한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건강해지고 싶다.”

이 글은 그녀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전한 말이었다. 백 작가는 과거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를 전전했다. 자신에게 맞는 전문의를 만나 12주간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였다.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허물고 일상에서 삶을 버티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이라면 필연적으로 얻는 깨달음이 있다. ‘죄 많고 이기적이며 보잘것없는, 벌레 같은 나조차도 용서해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빛을 향해 나아가며 자연스레 발가벗겨진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면서 오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고백이자 절대자에 대한 항복이다. 스스로 벌레 같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은 이 세상의 모든 마츠코들에게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건 위로와 사랑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한다. “너는 내 형상대로 만들었고, 내 숨결을 몸소 불어넣어 창조했다. 그만큼 넌 소중한 존재”라고. 그러곤 이렇게 손 내밀며 말한다.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나와 함께 가자.”

장기 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백 작가는 앞선 게시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는 마츠코의 삶을 실패로 보거나, 끝내 구원받지 못한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감독이 마츠코를 책임과 평가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녀를 단죄할 수 없도록. 그게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졌다.”

저마다 구원을 찾는 요즘 시대, 이 세상의 모든 마츠코가 성경에서 그 구원을 찾고 위로받길 바란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