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작가의 세계를 담은 책방

입력 2025-11-01 00:31 수정 2025-11-01 00:31

책방을 시작한 이들의 전직은 다양하다. 동네책방에 새로움을 가져온 중요한 이유다. 서점을 해본 적이 없으니 책방이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리 없다. 대신 자신이 꿈꾸던 이상 혹은 전직(前職)의 장점을 책방에 풀어놓았다. 작가의 책방도 비슷한 이유로 매력적이다. 국내에서 작가가 운영했던 책방 하면 먼저 동화작가 이가을이 떠오른다. 일반서점을 하다가 1983년부터 어린이책 전문서점인 ‘가을글방’을 운영했다. ‘공부머리 독서법’을 펴낸 최승필 작가도 남양주에서 ‘공독서가’를 하고 있다.

또 한 곳의 작가 책방이 탄생했다. ‘고정순책방’이다. 2025년 7월 헤이리 마을에 터를 잡았다. 복닥복닥한 서울을 피한지라 공간은 넓고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가을이 쏟아져 들어왔다. 잠시 앉아 고요함을 즐기기 제격이었다. 고정순 작가 역시 독자에게 책방에서만이라도 침묵의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그리하여 책방의 두 번째 이름은 ‘침묵의 책방’이다.

마침 책방에 있던 고 작가에게 “직접 해보니 어떠냐?”라고 물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있다”라고 답이 돌아올 만큼 그림책 작가가 책방을 해도 어렵다 했다. 오늘날 책방을 한다는 게 이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도 책방이 지속해서 생기는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대체불가한 고유한 매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 작가는 상당히 많은 책을 폭넓게 읽어온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그의 책방에는 그림책 말고도 인문교양서와 시집이 가득하다. 고 작가가 즐겨 읽고 좋아하는 책이 반영된 결과다. 가난했던 작가 지망생 시절, 고 작가가 자양분을 얻을 곳은 도서관과 책방뿐이었다. 게다 한국 어린이책 전문서점의 시작으로 불리는 ‘초방’에서 오래도록 매니저로 일한 적도 있다. 책방 그리고 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던 것. 결국 고 작가는 그림책 작가이자 책방 주인이 되었다.

책방의 큐레이션에는 이런 작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책방지기가 책에 추천의 말을 적는 거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한데 이곳은 작가의 책방이다. 고 작가가 손글씨로 써놓은 글은 단순한 책방지기의 추천사 이상이다. 정약용이 쓰고 박서무가 엮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독자는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다. “책방에서 일하던 시절 책만이 나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었고 그 중심에 아이러니하게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무연사회’에는 “10년 전 처음 글동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 함께 읽은 책입니다. ‘무연사회’가 두려워 글공부를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사람들 곁에서 쓰고 읽고 느끼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으며 “안개를 이보다 멋지게 묘사한 책은 없을 거라고 감탄하던 청년 고정순은 이제 이 책을 파는 책방지기”가 됐다. 작가의 책방은 작가를 빼닮는다. ‘고정순책방’은 작가의 세계를 책으로 엮은 집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