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29일 전격 타결된 것에 대해 경제·통상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발 관세 파고의 한고비를 넘겼다”고 입을 모았다.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2000억 달러를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분할 투자하는 것에는 “국내 외환시장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이라며 “양국 모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며 타협점을 모색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단 관세협상의 최대 쟁점인 ‘외환시장 불안정성’ 우려는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연간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며 “국내 조선업의 미국 진출, 자동차 관세 15% 인하 등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부분도 많이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협상 결과를 전해들은 뒤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150억~200억 달러는 해외에서 기채(채권 발행)하지 않는 규모”라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매년 200억 달러 정도면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관세 완화에 따른 대미 수출 회복과 국내총생산(GDP) 반등 기대감도 이어졌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산업은 관련 업체도 많고 수출도 많아 관세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이번 합의를 계기로 수출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되고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현금 투자에 대한 사업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김 명예교수는 “현금 투자 규모와 방식 등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앞으로도 미국 측과 조율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며 “거액을 투자하는 만큼 손해가 나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일본보다 조금 더 투자 사업에 개입할 여지를 확보한 점은 다행인 부분”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변덕’에 대한 불씨도 남아 있다. 주 실장은 “내년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민 불만이 커지면 바깥으로 화살을 돌리려 ‘관세 전쟁 2라운드’를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효과가 (관세 협상으로) 사라지게 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