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3개월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최대 쟁점이었던 3500억 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방식에 대해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되 200억 달러를 연간 한도로 설정했다. 이에 맞춰 자동차 관세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25%에서 15%로 줄어든다. 이번 타결로 수출과 투자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안보 분야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핵추진잠수함 연료 지원 요구가 한·미 동맹 현대화를 위한 카드로 부상하며 이목을 끌었다.
연간 200억 달러 한도는 양측 주장의 절충점이다. 당초 전액 현금투자를 고집했던 미국은 8년간 연 250억 달러로 수위를 낮춘 반면, 정부는 10년간 150억 달러 투자를 주장했다. 액수와 기간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한 셈이다. 연간 200억 달러는 우리 외환시장이 타격을 받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상한선이어서 미국 투자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준 면이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 관세 인하뿐 아니라 의약·목재품에 대해선 최혜국 대우를, 반도체는 경쟁국 대만에 불리하지 않는 관세를 받는 부수적 성과를 거뒀다.
당초 정상회담에서 관세협상 합의 여부는 불투명했다. 지난 7월 말 상호관세 15%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라는 개괄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투자 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공전을 거듭했다. 정상회담 직전까지 이 대통령은 “투자 방식, 금액 등 모든 게 쟁점으로 남아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협상이 연말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수출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던 와중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200억 달러의 현금이 매년 빠져나가는 것도 부담이다. 우리 외환보유 규모(국내총생산 대비 22%)는 비교대상인 일본(31%)에 비해 크게 적다. 협상의 원만한 이행을 위해서라도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외환 확충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 3개월간 합의문 부재로 한·미 간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협상 양허안(MOU)도 조속히 마련, 공개해야 한다. 대규모 대미 투자로 공백이 커질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한 지원, 규제 철폐 등의 입법 노력도 필수다. 대통령이 쏘아올린 원자력협정 개정은 북한의 핵고도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조속한 후속 협상을 통해 반드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