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무사하기

입력 2025-10-31 00:01

등교 시간 사거리를 지나는
초등학생들의 하얀 목덜미를 보면서

추사 김정희 집안사람들이 주고받았다는
한글 편지를 읽었던 날이 떠올랐다

“부디 무사하여라”

추사는
아들에게
때로는 부인과 며느리에게
편지 말미마다 이 말을 꼭 썼다

무사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보다

추사가 귀양지에서 그토록 원했던 건 결국
무사한 하루였다

오늘 사거리를 건너는 아이들의 하얀 목덜미를 보면서
나도 빌었다
“얘들아 부디 무사해라”
오늘도 내일도
더 커서도 무사해라
기억되지 말고 살아 있어라

보행 신호를 세 번씩이나 놓치면서
사거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허연 시집 ‘작약과 공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