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9일 오전 경주 구황교 사거리에서는 반미 시위대가 “노 트럼프” 구호를 연신 외쳤다. 시위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가면을 쓴 남성을 포승줄에 묶어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경제악당 트럼프 규탄’ ‘APEC 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미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도 있었다. 경주 노동동에서는 ‘중국 공산당(CCP) 아웃’ 구호를 내세운 반중 집회가 진행됐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시작부터 반미·반중 집회가 과열된 모습이다.
반미 시위는 ‘2025 APEC 반대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국제민중행동) 주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에 맞춰 진행됐다. 국제민중행동은 “기업 중심 세계화로 환경이 파괴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의 경제적 수탈에 맞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기자회견 중간에 시위를 빨리 마무리하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약탈로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며 “이런 제국주의적 강압엔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시작된 이후 ‘동궁과 월지’ 일대에서는 자주독립대학생시국농성단 70여명이 통제선을 넘어 행사장 100여m 앞까지 접근해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경주 힐튼호텔 인근에서도 기습 반미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경찰은 충돌에 대비해 주요 이동로마다 인력을 배치하고 주요 시위 장소 주변에는 펜스를 설치했다.
이날 오후 4시쯤엔 노동동 신라대종 인근에서 보수단체 자유대학과 광화문안보단체가 주최한 트럼프 방한 환영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한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영어로 ‘We Go Together’가 인쇄된 풍선을 들고 모여들었다. 친미 시위대는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등의 반중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박준영 자유대학 대표는 “대한민국이 중국 공산당에 삼켜지고 있다. 중국의 무비자 입국으로 마약·납치 등 각종 범죄에 국민이 노출되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 같은 행태를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여한 김준희(24)씨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은 자유진영의 결속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반미·반중 집회는 APEC 정상회의가 끝나는 다음 달 1일까지 줄줄이 예정돼 있다. 경찰은 시위가 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이동 구간별로 인력을 배치해 철통 경호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경주=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