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父子 학교 속으로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입력 2025-10-30 03:01
최근 강원 춘천시 청소년 쉼터 ‘꿈터’에서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이 함께 컵라면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난 10월 초 강원도 춘천시의 한 건물 1층에 문을 연 청소년 쉼터 ‘꿈터’엔 간판이 없다. 대신 ‘청소년 누구나 와서 라면 먹고 쉴 수 있는 곳’이라는 배너만 걸려 있다. 그 말대로 오후 3시,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라면을 끓여 먹으며 깔깔대는 소리가 가득해진다. 오픈 며칠 만에 하루 50여명이 찾는 ‘라면 맛집’이 된 것이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남춘천남중 1학년 손무광(13)군은 “인스타에서 친구들이 좋은 곳이 있다고 소개해줬다”며 “친구랑 수다도 떨고, 형·누나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청소년 세상 안으로 들어가 만든 관계

이 쉼터의 운영자는 춘천순복음호두나무교회 표명혁(50) 목사와 박성남(50) 사모다. 표 목사는 10년간 지역 대형교회에서 공부방 사역을 하며 청소년 돌봄을 이어오다 3년 전 청소년비전센터의 꿈을 품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교회를 낯설어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학교 앞, 거리 한가운데 쉼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표 목사는 “춘천시 틈새돌봄사업 지원을 받아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거리전도 중 쉼터에서 본 아이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그때 복음이 관계를 통해 전해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표 목사 부부는 지역 청소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대안학교에 다니던 중학교 3학년 아들도 이 지역 특성화고로 진학시켰다. 문제 학생이 많기로 소문난 학교에서 아들은 친구들을 교회로 이끌었고 친구의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교회에 나온 같은 반 친구만 20명이 넘었고 학교 분위기도 달라졌다. 박 사모는 “무단결석하는 아이들도 줄고 방과 후 아이들의 귀가 시간도 빨라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전엔 한 해 10건 넘던 학교폭력이 작년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감사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생활에 방황하며 우울증약을 먹던 최종원(16)군도 교회에 나오면서 변화를 경험한 학생이다. 최군은 “교회가 너무 좋아서 쉼터 봉사도 하고 목사님도 돕는다”면서 “나중에 나 같은 청소년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친구를 따라 교회에 왔다가 지금은 찬양 인도자를 맡고 있는 한결(18)군도 “교회를 다니면서 무기력했던 학교생활에서도 적극적이게 됐고, 다른 사람도 챙길 줄 알게 됐다. 유도부 동생 5명도 교회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학교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간 건 아들만이 아니다. 표 목사는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회장을 맡아 간식 나눔과 기도 모임도 이끌고 있다. 이 학교의 변화가 알려지면서 지역 내 학생 기도 모임을 운영하는 학교가 18곳으로 늘어났다.

청소년 중심의 교회, 지역을 바꾸다
지난 3월 강원 춘천시 명동 거리에서 표 목사와 교회 청소년들이 거리 전도에 앞서 기도하는 모습. 춘천순복음호두나무교회 제공

표 목사 부부는 매일 점심시간 지역 학교 5곳을 돌며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누고 짧은 복음과 기도를 전하는 일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은 교인 60명 중 40여명이 중고등학생으로 채워지는 결실로 이어졌다.

명실상부 청소년 중심 교회로 선 것이다. 주일예배도 학생 눈높이에 맞춰 활동 중심으로 진행된다. 학생 성도 절반 이상이 금요기도회에 나오고 표 목사에게 악기를 배워 찬양팀에 합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밤새 간증과 찬양을 나누며 교회에서 자고 새벽기도까지 이어지는 ‘리트릿’ 프로그램도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것이다.

아이들의 변화는 어른들도 변화시켰다. 표 목사는 “청소년들이 모이니 교회를 향한 동네 분위기가 달라지더라”면서 “민원 대신 격려가 늘고 성탄절이나 전도잔치 때도 학생들이 믿지 않는 가족을 데려와 예배당이 가득 찬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관계와 돌봄이다. 표 목사 부부는 99㎡(30평) 남짓한 2층 건물의 1층 교회와 2층의 집 모두를 쉼터로 개방했다. 예수님 사랑을 먼저 느끼게 하고 싶어 밥을 주고 잠을 재운다. 호두나무교회란 이름도 아가서 6장 11절 속 호두나무 새싹을 돌본 술람미 여인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사랑으로 품겠다는 의미로 지었다. 비밀번호를 아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저녁이면 전화나 문자로 메뉴를 묻는다. 박 사모는 “학생들은 배고파서가 아니라 정이 그리워 오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표 목사는 “전도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는 기다리기보다 나가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복음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춘천=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