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영어시험이 美대학 수준… 선행 사교육 부추기는 학교

입력 2025-10-30 02:06
정을호(가운데)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고교 내신 시험 분석결과 발표.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고1 중간고사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이 출제되고 있다. 영어 시험에서 미국 대학 수준의 문장이나 어휘를 내는 학교도 있었다. 고교들이 상위권 변별을 위해 출제하는 문항들이 선행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어 교육 당국의 지도·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전국 16개 고교의 올해 1학기 수학·영어 중간고사 기출문항을 분석해 29일 발표했다. 사교육 접근성과 고교 유형, 대입 실적 등을 기준으로 서울 4개 지역에서 8개교, 의대·서울대 진학 실적이 많은 상위 10개교 중 중복을 뺀 16곳을 분석했다.

영어는 영문 텍스트의 난이도를 보여주는 ‘ATOS 지수’를 활용했다. 문장 길이, 단어 길이, 어휘 난이도 등 지문 수준을 고려해 미국의 학년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16개 고교가 채택한 ‘공통영어Ⅰ’ 교과서 8종은 교과서 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미국 중2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간고사에서 출제한 초고난도 문항 수준은 미국의 고3 수준으로 분석됐다. 이들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으려면 교과서만으론 힘들고 4개 학년을 앞서가야 한다는 뜻이다.


교과서와 중간고사 초고난도 문항의 간극이 가장 큰 곳은 강남구의 한 사립고였다. 이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는 미국 중1 수준이지만 중간고사는 미국 대학 2학년 수준으로 출제됐다. 서울대 진학을 많이 하는 한 자율형사립고도 교과서는 중학교 수준이지만 초고난도 문항은 미국 대학 1학년 수준이었다.

수학은 교사 18명과 교육과정 전문가 2명이 분석했다. 수학도 16개 고교 전부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총 370개 문항 중 18.4%인 68개 문항이 교육과정 밖에서 나왔다.

사교육 접근성이 좋은 강남구와 서초구 학교들이 구로구와 금천구 학교보다 킬러문항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강남·서초 4개 학교의 킬러문항 출제 비율은 17.7%, 구로·금천 4개 학교는 11.8%였다. 의대·서울대 진학 실적이 좋은 8곳은 25.2%였다.

고1 내신 성적은 ‘대입 레이스’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함께 대입 양대 전형요소로 꼽히는 고교 내신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상위권일수록 만회가 어렵기 때문에 고1 성적을 망치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포기하고 수능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녀가 고1 때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교육부의 지난해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고1 월평균 사교육비는 56만1000원으로 초1~고3 12년 중 최다였다. 고1 내신은 중학교 선행 사교육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사교육걱정은 “내신 시험이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가 지속되면 공교육의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교육 당국이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