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역발상이 안겨준 ‘대박’

입력 2025-10-30 00:32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으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세계를 홀리고 있다. K팝, K드라마, K무비에 환호하고 ‘케데헌’이 최근 정점에 올라섰다. 케데헌에 등장한 ‘K푸드’도 화제다. 주인공이 한 줄짜리 김밥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인기를 얻고 있다.

김밥의 재료가 되는 김 양식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히로시마현 해태업자들에 의해 시험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일본 음식 노리마키스시를 닮은 김밥이 알려졌다고 한다. 김은 광복 이후 중요한 대일 수출품으로 ‘귀한 몸’ 대접을 받았다. 국내에서 생산된 김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는 바람에 어지간한 집에선 아이들 소풍 때나 맛보던 김밥을 싸주기 힘든 지경이었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한국형 김밥은 국민의 사철 메뉴로 성장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채소·고기·김치·고추·참치·치즈 등 종류가 무궁무진해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삼각김밥, 꼬마김밥, 누드김밥 등 생김새도 다채롭다. 과거 소풍 때나 먹던 별식이요 특식이었던 김밥은 요즘 전문점 덕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온 국민의 음식’이 됐고, 세계적인 음식 반열에도 올랐다. 냉동 김밥이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를 끌더니 뉴욕에선 한 줄에 2만원짜리 프리미엄 김밥도 팔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지난 25~26일 경북 김천에서 열린 김밥축제가 화제다. 이틀 동안 축제를 찾은 사람은 김천시 인구 14만명을 넘는 15만명이었다. 지난해 이틀간 10만명이 축제장을 방문하면서 빚어진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김천시는 김밥 수량과 교통 대책 등을 철저히 준비했지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방문객에 곳곳에서 불편이 빚어지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김밥을 사는 데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는 후기가 이어졌고, 준비한 김밥이 동나며 먹지 못했다는 방문객들도 있었다. 몰려든 인파에 따른 교통대란이 빚어지면서 축제 초대가수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불편 속에서도 방문객들은 이조차 즐겁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오래 기다린 만큼 맛있는 김밥이었다’ ‘김밥 퀄리티가 엄청 좋다’ 등의 글이 잇따랐다. 원래 김천시는 김밥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김밥이 김천시의 대표적인 특산품은 더더욱 아니다. 시작은 역발상에서 비롯됐다. 2023년 김천시는 관광 트렌드를 이끄는 전국 MZ세대를 대상으로 ‘김천 하면 뭐가 떠오르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김밥이 떠오른다’는 응답이 1위였다. 젊은 세대들은 분식점 ‘김밥천국’을 줄여서 ‘김천’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단순히 이름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축제를 주최 측 위주가 아닌 관람객 중심으로 준비했다. 의례적 개막식과 내빈 소개, 축사, 환영사 등 의전 관행을 없앴다. 김밥 참여업체를 4배 이상 확대하고 시간당 1500줄을 생산하는 김밥공장을 가동했다. 또한 부스별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김밥 잔여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전광판도 설치해 관람객 불편 사항을 대폭 줄였다.

‘오직 김밥’이라는 콘텐츠로 정체성을 명확히 한 것도 성공한 요인이다. 지난해 8개 업체였던 김밥 판매 업체를 32개 업체로 늘렸다. 비용이 많이 드는 유명가수 대신 김밥 노래를 부른 가수 ‘자두’, 김밥의 주재료인 달걀을 상징하는 ‘스탠딩에그’, 삼각김밥 머리의 대명사 ‘노라조’, 김밥 앨범을 낸 ‘죠지’ 등을 초대해 ‘진짜 김밥천국’을 보여줬다. 어쩌면 엉뚱한 발상이었을지도 모를 시도가 ‘대박’을 터뜨렸다. 김천시의 성공 사례를 따라 ‘고성군-샤우팅 축제’ ‘화성시-외계인 페스티벌’ ‘공주시-무도회’ ‘고양시-고양이 축제’ 등의 제안도 나온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와 생각의 전환 그리고 적극적인 추진력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