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코스피 5000보다 3% 성장을

입력 2025-10-30 00:38

코스피 상승 속도가 이렇게 빠른 걸 본 기억이 없다.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 고조로 코스피 3400이 무너졌다’고 보도한 게 불과 한 달여 전인데 그간 무려 600포인트 이상이 올라 4000을 돌파했다. 과열인 것처럼 보이지만 방향이 급격히 바뀔 것 같지도 않다. 투자자 예탁금이 사상 최대 규모인 80조원 안팎으로 유동성이 풍부하고 버블 징후도 뚜렷하지 않다. 개인 투자자들도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포모’(소외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면서도 주가가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코스피 상승의 원인은 금리인하 기대와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 등 여러 가지지만 정부 정책도 분명한 역할을 했다. 코스피 5000시대를 목표로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추진 등 일관된 밸류업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높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주주의 이익이 무시되기 일쑤였던 과거의 환경이 바뀌면서 투자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새 정부가 목표를 세우고 추진한 정책이 불과 수개월 만에 성과를 내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주가 상승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 반도체주 고공행진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총수와 임원의 주식 재산이 덩달아 불어났다는 보도에서 알 수 있듯 주가 상승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

주식 투자자가 1400만명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투자자 가운데서도 근로소득을 뛰어넘을 정도의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사람은 소수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투자할 여윳돈이 없는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 힘든 상황에서 주가지수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지표는 경제성장률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3분기 한국 경제는 1.2% 성장했다. 소비쿠폰 배포 등에 힘입어 민간소비가 살아난 덕분으로, 정부는 ‘올해 1%대 성장이 가능해졌다’며 반색하고 있다.

1분기 -0.2%, 2분기 0.7%의 아찔했던 성적을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릴 만하지만 이 정도 성장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올해 1%대 초반 성장을 한다고 해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0.8%)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0.7%) 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기록이 된다. 위축된 고용과 내수 부진 등 활력을 잃은 경기의 회복을 위해선 더 높은 성장률이 필요하다. 더욱이 경제의 기초체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해 내년 1%대 후반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도 그 정도 성장률에 그친다는 의미다.

주가가 오르고 경제가 반등 신호를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건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다. 생산·소비에서 성장이 이뤄져야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 체감할 수 있는 경기 회복을 이룰 수 있다. 성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주가지수만 높아지면 실물과 금융의 괴리가 커져 자산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하더라도 이는 주식 투자를 하는 ‘그들만의 잔치’에 그치게 된다.

정부·여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코스피 기록 경신이라는 결과에 취해 ‘더, 더’를 외칠 게 아니라 2%든 3%든 성장률 목표를 세우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혁신과 구조개혁 노력이 중요하다. IMF 한국미션단은 지난달 3% 경제 성장을 하려면 연금개혁과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생산성 격차 축소, 장기적인 재정 건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